이병모(李秉模) 묘

 □ 소 재 지 : 양서면 복포2리
 □ 시     대 : 조선 후기
 
   양서면소재지에서 6번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12km 정도 가면 양서면 복포 2리 입구에 이르는데, 왼쪽으로 제탄마을 진입로가 나온다. 이병모 묘는 이 길을 따라 1.3km 정도 들어간 왼쪽 구릉에 있다.
   이병모(李秉模, 1742~1806)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이칙(彛則), 호는 정수재(靜修齋), 본관은 덕수(德水)이다. 이 식(李植)의 5대손이자 영의정을 증직받은 이연(李演)의 아들로 지평현 백아곡(현 양동면 쌍학리 안골)에서 살았다.
  1773년(영조 49) 문과에 급제하여 경기도 암행어사, 수찬(修撰) 등을 역임하고, 1778년(정조 2) 동지서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온 후 승지가 되었다. 1784년(정조 8) 경상도관찰사가 되었고, 이어 규장각 직제학, 형조판서, 함경도와 평안도의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794년(정조 18) 우의정이 되었고, 이듬해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이 되었다. 1801년(순조 1) 실록청 총재관(實錄廳 總裁官)이 되었고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를 거쳐 1805년(순조 5)다시 영의정이 되었다. 글씨와 문장에도 뛰어나 평안도관찰사로 재직할 때 묘향산 수충수(酬忠祠)에 있는 휴정(休靜)의 비문을 지었으며, 1797(정조 21)애눈 왕명으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와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등을 편찬하였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묘는 정경부인 청송 심씨와 합작되어 있으며, 묘 왼쪽(서쪽)에는 묘비가 있고, 중앙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있으며, 좌우에는 망부석이 배치되어 잇다. 묘비(높이 264, 폭 63cm, 두께(37cm)는 1807년(순조 7)에 세워진 것으로 아들인 이노익(李魯益)이 비문을 지었다. 비좌와 비신 ․ 옥개석이 갖추어져 있으며, 비좌는 백색 화강암으로 상부를 말각하였고, 옥개석은 백색 화강암으로 팔작지붕 형태이다. 비신은 오석(烏石)으로 앞면에 “有明朝鮮國議政府領議政 贈益文翼李公墓 貞敬夫人靑松沈氏祔左”라고 음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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