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미리 고분군1

   망미리 저른부락의 북편 산지에 위치한다. 이 일대는 해발 314.5m 정도 되는 남서 산봉우리에서 북동쪽으로 분기한 능선 사이의 골짜기로 흘러내린 소능선 말단부로 해발 180m 안팎이다. 북동편에 좁은 곡간 평야가 형성되어 있으나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입지조건이 좋은 편은 아니다. 주변에 십년생 정도 되는 소나무가 우거져 있는 등선 정상부를 따라 약 6m의 거리를 두고 석곽묘 2기가 도굴된 채 드러나 있다. 마을 주민에 의하면 이 고분들은 약 30년 전에 도굴되었는데 질그릇과 청동거울 같은 것이 나왔다고 한다. 북동쪽에 있는 것을 1호, 남서쪽에 있는 것을 2호라 하고,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호묘는 장축이 북동-남서방향(N-60-E)이고, 석곽의 크기는 길이 230cm, 폭 100cm, 현재 깊이 90cm 정도이다. 길이 20~50cm 정도 되는 할석을 눕혀 쌓아 네 벽을 만들었는데 남동장벽은 심하게 파괴되어 있다. 현재 관찰되는 벽은 최고 8단 정도이다. 개석은 170cm, 폭 110cm, 두께 20~30cm 정도 되는 편평한 화강암으로 현재 양단벽상에 각 1장씩 덮여 있는데 석곽과 남아 있는 개석의 크기로 보아 본래는 3장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2호묘도 심하게 교란되어 개석은 보이지 않고 내부에는 낙엽과 흙으로 차있다. 장축은 북동-남서방향(N-40-E)이고 한 변의 길이가 50~70cm, 두께 10~15cm 정도 되는 할석이 눕혀 쌓아 네벽을 만들었으며 8단까지 관찰된다. 크기는 길이 245cm, 폭 85cm, 현재 깊이 85cm 정도이다.
   채집된 유물이 전혀 없어 석곽의 연대는 알 수 없다. 양동면 쌍학리에서 이와 비슷한 크기의 석곽이 조사된 점 등을 고려하면 축조연대를 삼국시대 정도로 볼 수도 있겠으나 입지조건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예컨대 양동쌍학리고분군은 전면에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는 나지막한 구릉사면인 데 비해 이 고분군은 골짜기의 소능선에 위치한다. 변하기 힘든 분묘 입지의 차이는 시간차를 반영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이러한 점과 고려시대에도 석곽묘가 축조된 점을 감안하여 이 석곽묘의 연대는 잠정적으로 통일신라~고려시대로 보고자 한다.
   확인된 2기 모두 도굴되고 파괴되어 있으나 축조연대 등을 밝히기 위한 발굴과 함께 주변지역에 대한 정밀지표조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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