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선생 묘

 □ 소  재 지 : 강하면 동오리 산157
 □ 시      대 : 조선 세종 15년(1433)
 □ 지정사항 : 경기도 기념물 제62호
 
   강하면소재지에서 광주시 방향으로 88번 도로를 타고 1.5km 정도 가면 왼편으로 동오리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2.5km 정도 가면 동오 1리 간촌마을이 나온다. 간촌마을 오른쪽 오솔길로 400m 떨어진 야산에 유 관의 묘가 있다.
   유 관(柳寬, 1346~1433)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자는 경부(敬夫), 호는 하정(夏亭),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1371년(고려 공민왕 20)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조선이 건국되자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이 되었다. 1397년(태조 6) 대사성에 이어서 형조 ․ 이조의 전서(典書)를 지냈고, 강원도 ․ 전라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401년(태종 1) 대사헌으로서 불교를 적극 배척하였고, 이어 간관을 탄핵했다는 이유로 파직되기도 하였다. 이후 다시 등용되어 1411년(태종 11)에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으로 『태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424년(세종 6) 우의정으로 승진. 『고려사』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는 성품이 청령검소하고 청빈하여 세종 때 청백리에 녹선되기도 하였다. 시호는 문간(文簡)이고, 저서로는『하정집(夏亭集)』이 있다.
   봉분은 부인과 쌍분으로 묘비 2기가 함께 있다. 이수가 없는 화강암재의 구비(전체높이 143cm, 폭 44cm, 두께 23cm)는 묘의 왼쪽에 있는데 찬 ․ 서자는 비가 마모되어 알 수 없다. 묘 중앙에는 1998년에 세운 신비(전체높이 195cm, 폭 54cm, 두께 24cm)가 있다. 이 외 묘역 앞에는 상석, 망주석, 문인석, 장명등이 있다. 묘는 화강석으로 하단을 1단 장방형으로 돌렸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신도비(전체높이 228cm, 폭 68cm, 두께 25cm)는 1891년(고종 28)에 건립된 것으로 신석우(申錫愚)가 비문을 짓고, 김흥집(金興集)이 글씨를 썼다. 화강암재 이수에 비신은 대리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면 상단에 “崇祿大夫 議政府右議政”이라 음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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