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맹경 묘역


 □ 소  재 지 : 옥천면 신복리 산301
 □ 시      대 : 신도비-조선 세조 8년(1462)
 □ 지정사항 : 경기도 기념물 제154호
 
   옥천면사무소에서 북쪽으로 약 1.5km 정도 가면 신복 1리 서촌마을에 이른다. 강맹경 묘역은 서촌마을에서 서쪽으로 약 300m 정도 떨어진 야산 능선의 70m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강맹경(姜孟卿, 1416~1461)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자는 자장(子章), 본관은 진주이다. 지창령현사(知昌寧縣事) 강우덕(姜友德)의 아들로 1429년(세종 11) 문과에 급제하여 사인(舍人), 지승문원사(知承文院事), 이조정랑,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 등을 지냈다. 1451년(문종 1)에는 우부승지에 임명되고, 이듬해 도승지가 되었다. 단종 때에는 이조참판과 한성판윤(漢城判尹) 등을 역임하였다. 1445년에는 계유정난(癸酉靖難) 대 수양대군을 도운 공으로 좌익공신(左翼功臣) 2등에 오르고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에 봉해졌다. 1456년(세조 2) 좌찬성을 거쳐 이듬해 우의정에 오르고, 하등극사(賀登極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묘 앞에는 묘비, 상석, 장명등이 있고, 묘 좌 ․ 우에는 문인석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 석물들은 고려의 전통을 계승한 조선초기의 대표적인 조각양식이다. 묘소의 좌측에 위치한 신도비(높이 274cm, 폭 85.5cm, 두께 25.5cm)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보호각이 마련되어 있다. 신도비는 1462년(세조 8)에 건립된 것으로, 비문은 신숙주(申叔舟)가 짓고, 강희안(姜希顔)이 글씨와 전자를 썼다. 신도비는 이수와 대좌를 갖추고 있으며 비신은 대리석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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