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사 원증국사석종비


 □ 시      대 : 고려시대(1386)
 □ 지정사항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3호
 
   이 비석은 현재 경내 함씨각과 산신각 사이의 평지에 자리하고 있다. 비좌를 따로 만들어 비를 세운 것이 아니라 자연암반을 이용하여 위쪽을 평평하게 다듬어 그 위에 비신을 세웠다. 땅속에 솟은 바위는 대석과 비좌의 몫을 맡고 있다.
   비신은 널리 알려진 방법으로는 달리 비신의 좌우에 각각 한 장의 장방형 돌기둥을 세워 비신을 감싸고 있다. 돌기둥은 화강암을 다듬어 만들었는데 비신의 양 측면과 맞닿는 부분에는 비신의 두께만큼은 홈을 파서 비신이 꼭 끼게 하여 지주석(支柱石)의 역할과 더불어 장식효과도 내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고려말에 조성된 여주 신륵사의 보제존자석종비(普濟尊者石鍾碑, 보물 제229호)와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 보물 제230호) 등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한 시대에 유행하였던 형식적 특징을 보인다.
   덮개돌, 즉 개석은 한 장의 돌로 만들었다. 윗면은 평평하고 아무런 새김이 없으며 측면은 갑석(甲石)처럼 수직의 굽을 돌렸고 아래쪽으로 내려오면서 원호(圓弧)를 이루고 있다. 아랫면 역시 평평하면서 아무런 새김이 없지만, 다만 중심부에 가늘고 긴 홈을 파서 비신의 상단과 비신을 감싼 좌우의 지주석의 정상부가 꽂히도록 마련하였다.
   비신의 돌은 검은빛의 점판암이다. 전면에는 상다부분에 “圓證國師石鍾銘”이란 7자가 전서체로 큼직하게 가로로 음각되어 있다. 그리고 비신에는 비신의 주연부를 따라 2줄의 음각선이 새겨져 방곽(方廓)을 이루며 그 안에 20행으로 이루어진 비문이 새겨 있다.
   비신의 뒷면에는 상 ․ 하 2단으로 나누어 16행의 비문을 새기고 있는데 비의 건립에 동참한 사람들의 명단, 곧 조연기(助緣記)가 그 내용을 이룬다.
   비의 재질이 무른 점판암이어서 위쪽에 균열이 있고 여러 곳에 깨져 나간 부분이 있어 현재로는 비문 전체를 읽기가 어렵다.
   비신의 크기는 높이가 103cm, 너비 67.5cm, 두께 3.8cm이다. 지주석은 높이가 109cm, 너비 14cm, 두께 20.5cm이고, 덮개돌은 가로 112cm, 세로 44cm, 두께 13.5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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