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포리 지석묘군

 
   상자포리 남한강변에 위치하였던 지석묘군으로 팔당댐 건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이화여자대학교, 단국대학교 등의 조사단에 의해 발굴조사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7기의 지석묘와 2기의 석관묘, 이화여자대학교에서는 5기의 지석묘, 단국대학교에서는 5기의 지석묘를 발굴조사 하여 총 17기의 지석묘와 2기의 석관묘가 조사되었다. 현재는 이 조사된 지석묘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는 상태이다.
   상자포리 일대에서 조사된 지석묘들은 대부분 원상이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이 없이 홍수 등과 같은 자연적인 작용과 석재를 빼내가는 등의 인위적인 교란 등으로 훼손이 심한 상태였다. 비교적 원형 파악이 용이한 것들은 주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조사된 지석묘들인데 이 지석묘들에서는 다양한 부장유물이 함께 발견되어 이 지역 지석묘의 원형을 파악하고 문화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조사한 1호 지석묘의 경우 비교적 안정된 상황에서 동검 1점과 이와 함께 부장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천하석제 관옥이 출토되어 구조적으로 유사한 주변의 지석묘들의 문화적 성격을 파악하는 단서를 제공해 준다.
   우리나라 선사시대 유적에서 주로 발견되는 동검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비파형동검 혹은 요녕식동검이라 부르는 것들이고 이보다 더 발전된 형식이 바로 세형동검이다. 과거 일인학자들은 우리 나라 선사시대 문화를 논하면서 청동기시대에 주로 발견되는 마제석검류가 세형동검을 모방하여 만들어졌다는 설을 제기하여 우리나라 청동기문화 단계에서의 금속기 사용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였으나 이후 우리 나라 도처에서 동검을 비롯하여 심지어 세형동검의 용범도 발견되고 있어 이는 전적으로 부정되고 있는 실정이다.
   상자포리 지석묘에서 출토된 동검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세형동검에 속하는 것인지 아니면 비파형동검에 속하는 것인지에 대해 약간의 이견이 있다. 왜냐하면 상자포리 동검의 형태가 세형동검과 비파형동검의 중간적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 요녕식 동검이 세형동검화되는 과도기적인 양상인지 아니면 이 두 형식에 속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형식의 출현인지는 좀더 많은 자료의 축적을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위와 같은 모든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지석묘에서 출토되는 동검 자체는 매우 귀중한 학술자료임에 틀림없다.
   상자포리 일대에서 조사된 지석묘들은 여러 가지 훼손상황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점에서 공통된 구조적 특징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묘광을 판 후 판석재를 이용하여 묘실을 구축한다는 점, 그리고 그 위에 다시 판석재로 뚜껑을 한 후 자갈돌을 덮고 개석을 올렸다는 점이다. 아마도 인근의 앙덕리와 양수리 일대에서 조사된 지석묘들도 이와 동일하거나 비슷한 구조일 것으로 보이며, 그 사이에 지석이 2~3장 있는 탁자식 지석묘들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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