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산리 유적


   이 유적은 남한강 남쪽 강안의 단구지역에 위치한 유적으로 강상면 병산4리 이규웅 소유의 인삼밭 일대이다. 최초의 조사는 1989년 단국대학교 중앙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조사이며 그 이후 유적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두 차례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병산리 유적의 층위는 총 6기로 구분되었는데, 각 층의 절대연대를 산소동위원소 분석을 통해 측정한 결과 중기구석기시대와 후기구석기시대 말기, 후기구석기시대 말기 등 세 시기의 구석기 문화층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었고, 특히 우리나라 구석기시대의 지층구조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토양쐐기 현상이 시기를 달리하며 두 차례 나타났다.
   층위를 통한 산대적인 연대추정과 이화학적인 분석을 통해 측정된 절대연대가 어느 정도 일치하고 있어 향후 다른 유적의 연대를 비교할 수 있는 매우 신빙성 있는 기준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병산리 유적에서는 발굴조사 결과 비교적 다양한 석기유물이 출토되었다. 또한 유적 발굴조사에서뿐 아니라 구석기 문화층을 파내어 벽돌의 원료로 사용하고 남은 석재를 버린 주변 벽돌공장의 쓰레기더미에서도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던 단구지역뿐 아니라 배후의 백병산 산록 하단부에 분포하는 잔구지역에서도 비교적 넓은 범위에 걸쳐 간헐적으로 석기가 채집되고 있다.
   병산리 유적 발굴보고서를 토대로 하여 출토된 유물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냥 ․ 채집에 이용된 석기로는 주먹도끼(handaxe), 찍개(choper, chopingtool), 다각면원구(polyhedral) 등이 있다. 이 중 주먹도끼는 2점으로 양이 적은 편이나 찍개와 던져서 사용하였던 사냥돌로 보이는 다각면원구류 는 상당히 많은 편이다.
   식량자원의 가공과 해체 등의 행위와 관련된 것으로 긁개(scraper), 밀개(end-scraper) 등이 있다. 물론 주먹도끼라든지 찍개와 같은 대형의 성형석기들도 뼈를 부수거나 사냥한 동물을 도살하는 행위에 사용되었을 것이다.
   도구제작과 관련된 석기는 새기개(burin), 홈날(notch) 등이며 이외에도 작은 격지들 가운데서 부분적인 사용흔이나 가공 흔적이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
   석기제작과 관련된 석기로는 망치돌과 석핵(core), 부정형의 돌부스러기, 격지 등이 있다. 이 중 직접적인 석기 제작과 관련된 것은 망치돌이며 그 외의 것들은 석기제작 후 남은 부산물들로 볼 수 있다.
   위와 같이 병산리 유적은 층위적인 상황에서나 출토유물의 다양성이라는 점에서나 매우 중요한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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