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사 원증국사석종


 □ 시      대 : 고려시대(1386)
 □ 지정사항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2호
 
   석종은 현재 산신각 바로 서남쪽 옆에 자리하고 있다. 자연석으로 축대를 만들고 그 중앙부에 석종을 안치하고 있다.
   석종의 구성을 보면 지대석 위에 네모꼴의 대석을 놓고 그 위에 탑신을 봉안하고 있다. 지대석은 땅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탑신의 받침돌, 곧 대석은 네모꼴인데 측면과 상면 모두에 무늬를 새기고 있다. 먼저 측면을 보면 삼구(三區)의 장방형액(長方形額)이 마치 안상처럼 새겨 있어 양 귀에 귓기둥(隅柱)을 두고 사이에 2개의 탱주를 돋을새김한 모습이다. 상면은 중심부에 원좌(圓座)를 두어 탑신을 받치고 있는데, 그 둘레에는 21잎의 단판복련(單瓣覆蓮)을 돌렸다. 그 바깥쪽에는 네 귀를 중심으로 원좌형 꽃잎과 구름무늬를 화려하게 돋을새김하였다.
   탑신과 상륜이 붙어 있는 일체형이다. 탑신의 평면으로 보면 원형이고 입면으로 볼 때 아래위가 비슷한 크기이고 중간부분이 부푼 기둥으로, 말하자면 배홀림된 모습이다. 이러한 형식의 탑신을 일러 범종의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석종형이라 일컫는다. 탑신의 겉에는 아무런 새김이 없다. 상륜부는 탑신의 정상부를 약간 평평하게 다듬어 그 위에 보주만이 솟아 있는 형식이다.
   사나사의 이 원증국사석종은 고려시대 이래로 조선시대에 걸쳐 널리 유행한 부도 양식 가운데 하나이다. 이 석종형 사리탑은 대석의 조성양식이나 무늬를 새긴 조각기법 등으로 미루어 고려시대 말기로 추정된다.
  사리탑의 겉에는 아무런 명문이 없기 때문에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탑을 조사한 정영호 교수는 3가지 요건을 들어 원증국사석종탑임을 논증하고 있다. 간추려 옮겨본다.

   첫째, 이 석종의 위치와 전설의 문제로 원증국사석종비가 이 석종에서 불과 9m밖에는 떨어져 있지 않으며, 석종 또한 원위치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사적기를 비롯하여 사찰에서는 오래 전부터 원증국사석종으로 전해오고 있다.
   둘째, 문헌기록의 문제로 비문에 “돌을 다듬어 종을 만들어 사리 10과를 넣어 사나사에 두었다(石爲鐘 藏舍利一十枚 治舍那寺)”는 기록이 분명하고, 현재 사나사에는 사리를 봉안할 조형물로는 이 석종밖에는 다른 것이 없다.
   셋째, 이 석종이 조형상으로 볼 때 각 부의 양식수법이 고려 말기로 추정되어 원증국사석종명비와 조성연대를 같이 하고 있다.
  사리탑의 크기를 보면 현재 총높이는 175.5cm이고, 대석의 한 변의 길이는 107cm, 높이는 21.5cm이고, 탑신받침의 원좌의 지름은 78cm이고, 탑신높이는 122cm이며 보주의 높이는 33cm이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