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박물관의 발굴보고서에 따르면 앙덕리 일대에는 조사된 1기 이외에도 7기 이상의 지석묘가 더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들 중 후에 단국대학교 중앙박물관에서 조사한 것들과 중복되는 것이 있는지의 여부가 불분명한 상황이어서 과거 앙덕리 일원에 분포하였던 지석묘의 총 수는 최소 7기 이상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단국대학교 중앙박물관에서 조사한 4기 외에 다른 지석묘는 모두 사라져 버렸으며 잔존하는 4기 또한 원해의 위치를 이탈한 채 마을 한 곳에 개석만을 모아둔 상태이다.
발굴조사 과정에서 지석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유물은 단국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한 Ⅱ지구 1호 지석묘의 하부에서 발견된 돌보습 수 점이 전부이고, 여타의 토기류와 석기 등 청동기시대의 유물은 다수 발견되었지만 모두 교란층이 내지 주변지역의 단순 유물포함층 출토품들이어서 부장유물로 보기는 어렵다. 더먼 주변지역의 청동기시대 유물이 조사된 지석묘의 직접적인 부장유물은 아닐지라도 지석묘 주변에 존재하였을 생활유적의 흔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볼 때 간단한 언급이 필요하리라 본다.
먼저 토기를 살펴보면 다량의 무문토기가 있는데 특히 원형을 알 수 있는 발형의 공렬토기는 다른 유적의 출토 예와 비교할 때 이 유적의 상대적 연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여기서 발견된 공렬토기는 구연 직하에 밖에서 안으로 완전히 관통되지 않고 반만 뚫려 있는 반투공식으로 파주 옥석리 주거지에서 출토된 토기들과 유사한 형태이다.
석기는 양수리 유적의 출토퇸 것들과 마찬가지로 유문암 계통의 강돌을 얇게 깨뜨려서 만든 타제석기와 격지, 석기 미완성품 등이 있으며 운모편암제의 보습류가 있는데 이 보습류는 Ⅱ지구 1호 지석묘(4호 지석묘)의 부장품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인 농경의 발달 문제와 연관지어 생각할 때 중요한 농경구 중 하나인 보습이 다량 발견된다고 하는 점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청동기시대 농경발달의 일면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이외 원삼국시대와 신석기시대의 토기편이 다수 발견되었지만 이에 대해서는 각 시대의 유적분야에서 상술하기로 한다.
다음에서 조사된 5기의 지석묘의 세부상황을 발굴보고서를 토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편의상 연세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한 1기를 1호로 그 외 단국대학교 중앙박물관에서 조사한 지석묘 중 Ⅰ지구 1호를 2호로, 2호를 3호로, 그리고 Ⅱ지구 1호를 4호로, 2호를 5호로 일렬번호순으로 명명하였다.
이 지석묘는 하부에 강돌로 간단한 매장구조를 갖춘 무지석식으로 개석의 규모는 길이 220cm, 폭 70cm, 두께 30~50cm이다. 개석의 재질은 견운모 편암이었으며 상면에 무수한 성혈이 파여 있었다. 출토유물로는 청동꽃개와 홍도편 등이 있는데 하부구조의 훼손이 심한 상태여서 이 지석묘의 부장유물인지는 불분명하다.
이 지석묘는 1호 지석묘와 마찬가지로 하부에 강돌의 1렬이 확인될 뿐 특별한 구조물이 확인되지 않는다. 개석은 방형의 판석형태로 규모는 길이 196cm, 폭176cm, 두께 42cm이다. 재질은 운모편암이며 상면 한쪽에 쐐기자국이 남아 있다. 하부에서 후대의 교란 유물이 발견되는 등 교란작용이 심하게 일어나 있다.
이 지석묘는 조사당시 이미 원해의 위치를 이탈한 것으로 보이며 하부구조의 상황은 전혀 파악되지 않았다. 개석 평면형태는 타원형이며 규모는 길이 292cm, 폭 218cm, 두께 71cm이다. 개석 상면에서 2개의 성혈이 확인되었다.
2호 지석묘와 마찬가지로 개석 하부의 한쪽에 강돌이 군을 이루고 있을 뿐 특별한 하부구조가 파악되지 않았는데, 정황으로 보아 무지석식의 지석묘로 보인다. 개석의 형태는 편평한 사다리꼴이며 규모는 길이 277cm, 폭 218cm, 두께 84cm이다.
개석하부에서 노출된 강돌 틈에서 여러 점의 돌보습이 발견되었다.
앞의 지석묘들과 마찬가지로 하부구조의 훼손이 심한 상태로 나타났으며 개석 하부에서 별다른 구조 없이 주변에서 판석 2점과 수점의 강돌이 몇 점 확인되었다. 개석의 형태는 타원형이며 규모는 길이 244cm, 폭 196cm, 두께 53cm이다. 개석 주변에서 발견된 판석은 두 개가 모두 비슷한 규모의 것으로 이 것을 지석묘의 하부구조에 사용된 석재라고 가정할 경우 지석으로 보기에는 너무 작아 석관의 벽석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러한 추정이 사실이라면 이 지석묘는 하부에 판석으로 만든 석실구조를 갖춘 무지석식의 지석묘로 볼 수 있으나 교란이 너무 심한 상태여서 확언하기 어렵다.
앙덕리 지석묘군
이 유적은 앙덕리 남한강 동안의 충적지에 위치하였던 지석묘군으로 1972년 팔당댐 건설당시 연세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1기가 조사되었고, 이후 제발공사와 더불어 단국대학교 중앙박물관에 의해 4기의 지석묘가 추가로 발굴되어 총5기의 지석묘가 확인되었다.
1호 지석묘
2호 지석묘
3호 지석묘
4호 지석묘
5호 지석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