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낙귀

(千洛龜, 1859-1923)
 
   유학자. 자는 致範, 호는 松齋, 본관은 영양, 증가선대부한성부좌윤 겸 오위도총부부총관 千錫善의 외아들이다. 화서 이항로의 고제성재 유중교와 지평의 금계 이근원의 문인이다. 벼슬이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을 역임하였다. 금강산 성조암을 탐방하고 선조 천만리의 청덕과 인용의 행적을 살피기도 하였다.
   1902년 12월에 의병군자금을 내고, 1903년(계묘) 면암 최익현, 금계 이근원, 의암 유인석, 주도로 先師 화서 이항로 추모사업을 위하여 전국 유림 600여 명이 강수계를 조직할 적에 계원으로 동참하고 50냥을 헌성하였다.
   1905년(을사) 9월에 최익현․이근원 등 52명이 율곡 이이선생과 화서 이항로 선생을 모시고 강명천수하기 위하여 강수재를 창건하려고 通文을 발의할 때에 동참하였고, 이 講修齋(蓬山書齋)는 1906년에 준공을 보고 율곡선생과 화서선생 두 선생을 봉안하였다.
   1907년(순종 1) 정미의병 봉기시 원용팔이 봉기하여 평창군 봉평에 이르자 원용팔 의병장의 참모종사가 되어 활약하였다.
   그 해에 봉평에서 지평면 국사봉 아래 수곡리로 이주하였다. 송재는 여기서 스승에게서 배운 도학과 의리를 강론하고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며 명성을 떨쳤다. 여주의 우암 송시열 사당 大老祠의 유사와 충북 화양동에 있던 만동묘의 유사를 지냈다.
의술 또한 탁월하여 향리 주민이 난치병을 앓거나 병에 걸리면 무료로 치료하여 주었고 향리 대소사에 예법을 물어오면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그러므로 천학자라면 양평군 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 후광을 입어 증손자 천세기가 국회의원에 출마하였을 적에 천학자의 증손자라며 군민의 지지도가 높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보사부장관을 지낸 천명기는 천세기 동생이다.
   저서에 『松齋遺稿』가 있으며 현재 독립기념관에 보존되고 있다. 묘는 지평면 수곡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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