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달

(曺承達, 1345-1404)
  
   고려말 문신. 자는 士聞, 호는 巢翁, 본관은 창녕, 상호군 曺義忠의 차남이다. 1345년(충목 1)에 의충의 아들로 태어나 1366년(공민 15)에 문과에 급제하여 좌랑에 있었으나 요승 辛旽의 폭정에 의해 관직을 삭탈 당하고 투옥되는 등 정치를 바로 잡는데 앞장섰다.
신돈이 죽은 다음에 상호군에 제수되었지만 1392년 이성계의 등극에 반대하여 아들 憶基와 함께 용문면 조현리에서 은거하며 고사리를 채취하여 연명하면서 13여년을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태조가 수차 불렀지만 소옹은 끝까지 나아가지 아니하니, 태조가 조씨일문 70여호를 강제로 추방하여 일가가 흩어졌다. 소옹의 청정명절이 백이숙제나 정포은과 비견된다고 하겠다. 1903년 후손 秉準이 조현리 좌랑골에서 묘를 찾고 규창이 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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