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영

(李春永, 1869-1896)
  
   독립유공자. 의병장. 육의사. 자는 友三, 호는 槐隱, 본관은 덕수인데, 지평에 세거하였다. 을미의병의 六義士 중 한 사람이다. 1869년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에서 李敏和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부친을 여이고 가사를 돌보지 않고 공부에 전념하였다.
괴은은 성품과 기질이 빼어나고 얼굴은 관옥이요 소리는 우뢰와 같고 눈썹에는 놀빛이 서리고 눈은 샛별 같으며 기개가 우뚝하여 사물에 구애되지 아니하고 세상과 더불어 타협하지 않고 성인의 큰 도를 즐겨 들으며 활달하여 포용심이 있고 점잖아서 덕을 이룬 군자와 같으니 보는 사람은 모두 장래에 크게 쓰일 인물로 기대하였다.
또 성품이 강개한 고로 큰 절개가 있고 도량이 넓어 계획하기를 좋아하며 바른 말을 잘 받아드리고 담기와 용맹이 특출하였다. 병자조약 이후로 나라의 변괴가 갖가지로 나타나더니 내적과 왜적의 무리가 야합하여 국모를 시해하고 횡포와 악독을 일삼아 예의도덕이 무너지고 국가가 멸망할 즈음에 이르렀다.
   충신과 역적 사람과 짐승의 구별을 아는 괴은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국가가 이와 같은데도 구출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하늘이 낸 남자의 뜻이 있다 하겠는가” 하며 구국의 결의를 다지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가사를 돌보지 않고 병서와 경제서적에 유의하며 덧없이 난리를 물리치고 바른 데로 돌아오게 하려는 뜻이 있었다. 밥을 많이 먹어 능히 한말 밥을 먹었다고 하며 용기도 대단하였다.
장성하여 의암 유인석 선생 문하에서 수학하여 자기 몸을 닦고 남을 다스리는 도를 듣게 되자 한가한 지역에 숨어살면서 어머니를 봉양하고 처자를 거느리며 가난을 잊어버리고 글을 읽어서 스스로 董邵南의 효자와 자애가 있었다.
   괴은은 안승우 부친 퇴앙 안종응과 만나 의논하고 지평고을을 밤마다 돌면서 친근한 포수들과 모여서 이 시국에 대하여 사람과 짐승이 판가름 나는 위금한 때임을 의리의 말로써 깨우쳐주었다. 이에 여러 포수들이 감격하여 따르므로 드디어 포수령 김백선을 찾아보고 뜻한 바를 말하였다. 김백선이 뜻을 같이하여 호응하므로 양편의병의 선창자가 되었다.
유인석을 총대장에 추대하고 괴은은 중군장의 책임을 부여받았다. 체천에 본부를 둔 의진은 충주성을 공격하기로 하였다. 당시 충주는 경군 400여 명과 지방 진위대 400여 명, 그리고 일본군 수비대 등이 성을 굳게 키기고 있었다.
의병부대의 군세를 보면, 이춘영 중군장의 군사는 총을 가진 400여 명이었고, 우기정이 제천에서 소모하고 이원하가․평창에서 동원한 민병 3,000여 명과 이호승이 따로 거느린 500여 명의 민병 등 수천 명이었다. 그러나 관군에 비하면 훈련 한 번 받지 않고 총 한 번 쏴보지 못한 열세한 군사들이다.
   1896년 1월 5일 충주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관찰사 김규식을 잡아 참수하여 장대 끝에 3일 간 매달아 친일 관리들을 경고하였다. 1896년 정월 11일(2. 23) 수안보의 일본군 수비대 수 백명이 서문 밖 달천(단월강)까지 공격해 왔다.
대장은 중군 이괴은에게 급히 장졸을 보내어 막게 하라고 명령하였는데, 괴은은 고하기를 “각 영의 장수들이 매일 출전하여 많이 피로한데 저만은 중군장으로 한 번도 출전하지 않아서 마음이 항상 불안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출전하여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도 하여 주겠습니다” 하니, 대장이 허락하였다.
   여기서 중군장 이괴은은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서 싸워 크게 이겼는데, 적병의 시체만도 50․60이 되었다. 적이 멀리 달아났으므로 일단 군사들을 집합하였는데, 그 중 두 군사가 있어 추격하던 발길을 멈추지 않고 40․50명의 적군을 추격하는 등 기세가 고조되었다.
적과 응수하던 중군장은 권총이 비틀러지며 나가지 않자 뒤에 있는 홍선표에게 주면서 “이거 보시오. 웬일인지 모르겠오” 하였는데, 이때 직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이정규는 지평 이괴은 집으로 가서 조상하였는데, 그 감회를
   “아! ‘공은 천하 만고의 대인이라’ 이를 만하다. 한 나라의 난을 담당하는 자는 한 나라의 대인이요, 천하의 대인이요, 한 세상의 난을 담당하는 다는 한 세상의 대인이요, 만고(萬古)의 난을 담당한 자는 만고의 대인이니, 오늘날의 난을 시험해 보면 천하 만고에 다시 또 있는 일이랴. ‘공은 능히 천하 만고의 난을 담당하였다.’는 내말이 어찌 한갓 망언일 따름이겠는가”라고 기록하였다. 광암 이규현은 「六義士讚文」에서 “향배를 옳게 보고 정하며, 華夏를 높이고 이적을 물리치는 계획을 세워 지산에서 기의하여 충주에서 순절하니 충성은 해와 달을 꿰뚫고 신의는 돼지와 물고기에까지 미쳤다.”라고 하였고, 괴은 이춘영에 대한 평가는 옥산 이정규와 광암 이규현의 기록에서 진실로 모두 드러났다. 묘는 양평군 향토유적 제1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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