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李守貞, 1477~1504)
 
   자는 幹仲, 호는 貞齋, 素寒齋, 본관은 광주, 판중추부사 李世佐의 넷째 아들이다. 사마 양시에 장원하고, 1501년(연산군 7)에 대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에 보직되고 승정원 주서, 봉상시 주부를 거쳐 홍문관 부수찬에 이르렀다. 이어 세자시강원 사서, 동학교수가 되었다. 1504년(연산 10)에 연산주가 황란해지자 내폐(內嬖)의 재구(纔?)에 걸려들었고, 가신 임사홍이 제 마음대로 다스려 집안 전체가 화를 입게 되었다. 그때 나이 28세였다.
   그러나 1506년 중종반정으로 원유(寃幽)를 밝혀 씻어주고 도승지 겸 홍문관 부수찬을 추증하였다. 후에 아들이 귀하게 되어 이조판서 찬성 의정부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1504년(연산군 10)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尹氏)의 복위문제에 얽혀서 일어난 갑자사화 때 화를 당하자, 당시 장인이 되는 판관 신승연이 시신을 거두어 양서면 목왕리에 장사지냈다.(양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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