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성

(李之星, 1633-1712)
  
   함평이씨 입향조. 자는 子文, 호는 白月堂, 본관은 함평, 충청도 관찰사 구원 李春元의 손자요, 난계 李楚奇의 아들이다. 1633년 남양주군 화도면 금남리 白月에서 출생하여 생원과 진사가 되고, 군수를 지냈으며 서종면 도장리로 이거하여 살았다. 벼슬이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저서에 시집이 있으나 분실되었다. 조부의 저서 『九畹?』은 문집이라기보다 시집이다. 이로 미루어 백월당의 시 솜씨도 짐작할 만하다. 백월당을 도장리의 개척자라고 본다면 백월당의 4촌 형인 계촌 이지익(1625-1694)의 왕래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지익은 5도 백을 역임했고 기로소에 들어갔으며 자헌대부 예조판서 겸 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이다. 멀지도 않은 북한강 건너 금남리에서 이들이 도장리 사촌 동생집에 행차가 있었다면 마땅히 도장리는 ‘國老所’ 라고 불렀을 것 같다. 그리고 도장리를 ‘국노소’라 하거나 후산을 ‘蓮花峰’이라 하는 것은 350년전 도장리에 자리잡고 80세를 살았던 함평이씨 백월당 이지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白月堂遺稿』가 발견되면 밝혀질 것이며, 그 유고야말로 도장리 향토사에 대한 긴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백월당 묘소는 도장리 국노소 연화봉하임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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