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周永, 1888-1951) 학자. 자는 公伯, 호는 友石, 본관은 연안, 양근향교 직원 李鉉禹의 아들이다. 자품이 온화하고 후덕하며 문필이 뛰어났다. 조상 숭배사상이 특별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가 망하자 통탄하고, 일제의 한국만족 말살정책으로 창씨개명을 강제하매 따르지 않고 왜정에 항거하였다.
사숙을 개설하여 후예를 교도하고 민족정신 고취와 함양에 노력하였다. 1945년 광복 후에는 기술을 보급하고 어려운 백성을 구제에 힘썼다. 1950년 6․25전란시에는 음으로 민생의 안위를 도모하였다. 세인이 감탄하여 그 공로를 칭송하고 숭덕처사라 불렀다. 묘는 옥천면 아신리 두곡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