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립

(尹昌立, 1595~?)
 
   조선조 문신. 자는 季振, 본관은 海平, 승길의 손자이며 윤 신(尹璶)의 둘째 아들이다. 1615년(광해 7) 22세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618년(광해 10)에 식년문과에 전시에 응시하여 미행을 했고 1623년(仁祖 1) 전적시에 정시 문과에서 을과로 급제하여 첨정, 응교 등을 역임하였다.
   1627년(인조 5) 5월 3일 명나라에 가는 외교사절로서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발탁되어 사신으로 길을 떠나게 되었다. 이 때 정묘호란에 의한 강화조약 직후라 대명관계와 대청관계로 사신의 임무가 중요한 때였다. 동지사에는 변응벽을, 서장관에는 윤창립을 임명하였다.
   그런데 태풍을 만나 도중에 해난사고로 순국하였다. 이때 윤창립이 인솔하는 배에 타고 있던 79명이 모두 실종되었다. 특히 글씨에 능하여 명성이 높았는데, 글씨는 현재 박물관에 소장되었다. 좌승지에 증직되었다. 묘는 용문면 조현리 산30-1번지에 있다. (용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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