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록

(李綏祿, 1564-1620)
   조선중기의 무신. 자는 綏之, 호는 東皐, 본관은 전주, 첨정 李克綱의 아들이다. 1585(선조 18)년 진사가 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 정자 등을 거쳐 1593년 병조좌랑이 되고, 외직으로 서산군수, 곽산군수를 거쳐 내직으로 돌아와서 세자시강원 문학․홍문관 부수찬을 지냈다.
   1602년 서북면체찰사 이원익의 종사관으로 활약하여 전후 질서회복에 공헌하였다. 1605(선조 38)년 내자시정, 통례원상례를 거쳐 다시 외직으로 광주목사․봉산군수․상주목사 등을 역임하여 백성들의 구휼에 힘썼다.
광해군 때에 상의원정․봉상시정․사헌부 장령을 역임하고 1617(광해군 9)년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그 후 사직하고 고향으로 은퇴하여 이원익․정엽 등과 교류했다. 뒤에 여주목사에 임명되고 당상관의 품계에 올랐으나 병을 핑계로 취임하지 않았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신도비는 양근리 192번지에서 용문면 조현리 산48-13번지 묘소 입구로 옮겼다. 비문은 김상헌이 짓고, 윤문거가 썼으며 허복이 전하였다. 신도비는 양평군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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