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하

(李紳夏, 1623~1690)
 
   조선조 문신. 자는 仲周, 호는 送老堂, 본관은 덕수, 택당 이 식(李植)의 둘째 아들로 1623년 출생하였다. 젊은 시절 관직에 출사한 부친 택당 및 형님의 빈자리를 채워 가사에 주력하였으며 1647년 부친상, 1648년 형님의 상을 치른 후 30세인 1652년 영능참봉에 출사하였다가 돈녕부 봉사로 전임하였다.
   1662년 서빙고 별검에 배명되고 장흥고 주부로 승차하였다가 제천현감을 역임한 후 용인현령으로 천직하였다. 1667년 신병으로 사직하였고 그 이듬해인 1668년 은진현감으로 서복되어 3년을 역임하고 세자익위사 익위를 거쳐 한성부 서윤으로 승차하였다가 백천군수로 부임하여 집무하던 중, 53세인 1675년 송시열을 필두로 한 서인정권이 몰락하고 남인이 득세한 정변이 일어나자 취중에 실수를 했다는 구실로 파직 당하였다.
   그로 인하여 서울의 집을 팔고 가솔을 이끌고 여주로 낙향하여 노후를 설계하였다. 그 후에도 군자감 판관과 한산군수를 제수하였으나 즉시 영을 거두도록 조치하고 취임하지 않았다.
   58세인 1680년 서인정권이 복권되자 장락원 첨정에 배명되었으나 “60이 불원한 나이에 구차하게 벼슬을 하겠는가?”하며 사양하였다. 다만 인경왕후의 상을 당하여 피할 수 없어 한성부 서윤을 맡아보다가 졸곡이 지나가 즉시 사직하고 낙향하였다. 그 후 청송부사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687년 자제들의 강권으로 마지못하여 예빈시 정을 제수하였다. 묘는 양동면 석곡리 모곡에 있다. (양동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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