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9년(숙종 5) 문과정시에 장원급제하여 가선대부에 오르고 도총부부총관 · 도승지 · 한성좌윤 · 공조참판 · 대사간 등을 역임하였으며, 경신대출척이 일어나자 평안도관찰사로 전임되었다.
1683년(숙종 9)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병조 · 호조 · 예조의 참판을 역임하고 다시 평안도관찰사로 나갔다. 이때 행한 선정으로 이곳 사람들은 사당을 지어 살아있는 초상을 걸어 놓고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그 후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되자 소론에 속하여 노론의 영수 김석주의 전횡을 탄핵하였다. 1694년(숙종 20) 갑술옥사 때에는 이조판서로 기용되어 판의금부사를 겸임하였다. 1696년(숙종 22) 영의정에 올랐으나 1698년 노론의 배척을 받은 소론의 영수 최석정을 변호하여 삭직되었다.
다시 판중추부사로 전임되고 이듬해 다시 영의정에 올랐으나 당쟁을 일삼는다는 노론의 탄핵으로 판중추부사에 전직되었다. 1705년 행판중추부사에 제수되고 나이 70세에 기로소에 들어갔다. 글씨를 잘 썼으며 나주의 죽봉사에 제향되었다. 묘는 옥천면 용천리에 있다. (옥천면)
유상운
(柳尙運, 1636~1707)
조선후기의 문신. 자는 悠久, 호는 約齋陋室, 시호는 충간, 본관은 문화, 좌랑 柳誠吾의 아들이다. 1660년(현종 1) 진사가 되고 166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을 시작으로 강계부사 등을 거쳐 통정대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