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영

(尹璣榮, 1871~1941)
 
   독립유공자. 본관은 파평, 수방의 아들로 강상면 송학리 158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31일 강상면과 4월 3일 고읍면의 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던 그는 광무황제의 승하를 당하여 망국의 통한을 가누지 못하고 있던 중 서울에서의 만세운동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는 최대현, 이보원, 신우균 등과 뜻을 모아 거사일인 3월 31일 오후 11시에 그는 강상면사무소 앞에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계속해서 4월 3일에도 고읍면세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는데, 이 때에는 고읍면 주민뿐만 아니라 인근의 강상면 · 강하면 · 양서면 등지에서 합류하여 시위 군중의 규모가 4천여 명에 달했다.
   이들은 고읍면 만세시위에 이어 양근읍으로 향하였으나 일본경찰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해산되고 말았다. 이때 윤기영은 현장에서 일경에 체포되었다. 그는 이 일로 인해 1919년 10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90도를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였다. (강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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