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사는 1917년 23세의 나이에 중국으로 건너가 남경을 거쳐 미국 캘리포니아로 건너간 후, 1930년 사회과학연구회를 결성하였다. 이러한 사회과학연구회는 급진적인 한인 유학생과 청년들이 규합하는데 많이 참가하였으나 미국정부 당국의 단속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해체되었다.
1937년 중 · 일 전쟁이 발발하자 중국인들의 대일항전이 일어날 때 조국독립운동의 기회로 인식하고 중국후원회를 조직하는데 앞장섰다. 따라서 지사는 뉴욕에서, 강영승은 시카고에서, 김강은 로스엔젤레스에서 각각 중국후원회를 조직하여 미주 중국인의 항일운동을 지원하였다.
1938년 중국에서 조선의용대가 결성되자 미주지역서도 후원하기위한 움직임이 일어나 1939년 4월 의용대 후원회가 뉴욕에서 결성되었다. 이를 계기로 삼아 시카고 및 로스엔젤레스 등 미주본토와 하와이, 쿠바, 멕시코 등에 지부가 설치되었다. 이때 지사는 뉴욕 한인들을 중심으로 조선의용대 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배일전선과 군사후원금 모집을 위한 각종 대중집회와 기념대회를 개최하면서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1940년 5월에는 대내외 공작의 통일을 위해 조선의용대원 연합회를 발족시키기에 이르렀다.
지사는 1941년 4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개최된 해외한족대회에 조선의용대 마주후원회 연합회의 대표로 참가하여 미주지역 독립운동단체의 연합에 힘을 쏟으며 헌신적으로 독립운동에 노력하였다. 1942년에는 민족혁명당 미주총지부로 개편하여 미주 총지부 위원장직을 맡아 운영하였다. 다음 1942년에는 민족혁명당 미주총지부로 개편하여 미주 총지부 위원장직을 맡아 운영하였다.
1943년 9월에 ‘독립지(Korea Independence)’에 ‘조선민족혁명당과 우리의 해방운동’ 이라는 글을 기고하여 독립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4년 임시정부의 워싱톤 외무위원회의원 겸 상해 대표단 단원으로 활약하며, 1945년 초 본격화된 OSS의 한반도 침투작전, 즉 남코작전(Napko Project)에도 참가하였다. 그는 미주에서 광복 후에도 돌아오지 못하고 1966년 4월에 로스엔젤레스에서 71세로 한 생애를 마쳤다.
정부에서는 199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追敍하였다. (양평읍)
변준호
(卞俊鎬, 1895~1966)
독립유공자. 변준호는 양평읍 양근리(303) 269-16의 출신이다. 일명 卞俊鎬, 卞壽元이라고도 한다. 지사는 부친 卞世永의 차남으로 태어나 서울 경신학교를 다녔다. 지사가 활동한 항일운동 지역은 주로 국외였다. 지사는 미주지역에서 조선의용대 후원회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워싱턴외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