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象仁, 1569~1631) 조선의 문신. 자는 聖求, 호는 西郭, 본관은 礪山, 현감 宋復興의 아들이요 임진왜란 때에 순절한 동래부사 宋象賢의 아우다. 1569년 고부에서 출생하였다. 1605년(선조 3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 형조좌랑을 역임하고, 1612년(광해군 4) 김직재의 옥사에 연루되어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직강, 지평을 역임하고,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 이후 어사로 부임되고 이어 함경 평안도 지역 선유, 사예, 사성, 장령, 집의, 사복시 정을 거쳐 안동부사가 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당시 충청도에서 조운을 감독하고, 이어 집의 종부시 정을 역임하고, 남원부사가 되어서는 각지의 난동자를 소탕하여 평정하였다. 1629년 전라도 관찰사에 등용되었으나 모함을 받아 사직했다.
정의감이 투철하고 충효를 겸비하였다. 유고에는 『西郭實記』가 있다. 조정호가 행장을, 장현광이 묘갈을, 박준빈이 묘지명을 지었다. 묘소는 서종면 정배1리 후산에 있다. (서종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