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영

(成泳, 1547~1623)
 
   조선의 문신. 자는 士涵, 호는 愚川 · 笞庭, 시호는 襄惠, 본관은 창녕, 강원도관찰사 성세평(成世平)의 아들로서, 여주군 홍천면 복대리에서 성장하였다.
   1568년(선조 1)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573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76년 사헌부 감찰을 거쳐 의정부사인에 임명되었는데, 이때 모친상을 당하자 지평현(양평군 용문면 삼성리)에 안장하고 3년간 시묘를 하였다. 1592년 여주목사가 되었다가 임진왜란시 경기도 순찰사로서 3,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참전하였고 이듬해 경기좌도관찰사 겸 개성 유수로 임명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남정량향사로서 군량미의 모달을 담당하였다.
   1599년 공조참판 · 한성부 좌윤을 거쳐 대사헌 · 예조참판 · 대사간 등을 역임하였으며 이듬해에 청백리에 뽑혔다. 1601년 한성부 판윤이 되고 1602년 지중추부사로서 진하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대사헌 · 충청도관찰사 · 호조판서 · 병조판서 등을 거쳐 1605년 좌 · 우참찬, 1607년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정인홍 등에 의해 유영경의 당인이라는 이유로 파직되었고, 1616년(광해군 8) 연일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별세했다. 인조반정 후 복관되었고 선조 때에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신도비문은 남태저가 찬하고, 임희우가 썼다. (용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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