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호

(文成鎬, 1872~1949)
 
   독립유공자. 본관은 남평이다. 용문면 중원리 410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12일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김백원 · 문일평 등과 함께 조선 13도 대표자 명의로 독립요구서를 낭독하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1일 만세운동이 시작된 이래 일제의 대대적인 검거선풍으로 인하여 서울에서는 며칠간 조용한 양상이 지속되던 중 일제는 일본군으로 하여금 시가행진을 하면서 민중을 위압하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성호 등은 3·1 운동 후 서린동 영흥관에 모여 3·1 독립운동의 선언식의 후속 조치를 취하여 만세운동 열기를 확산시킬 필요가 있음을 공감하고, ‘애원서’ 라는 제목하의 “조선독립은 2천만 동포의 요구다. 우리들은 손병희 등의 후계자로서 조선 독립을 관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취지의 선전 문서를 작성한 뒤, 이를 여러 장 인쇄하여 배포하였다.
   그리고 3월 12일 보신각 앞에서 수백 명의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애원서를 낭독하고, 문성호가 선두에서 앞장서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지사는 이일로 인해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8월에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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