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克中, 1560~1614) 조선의 유학자. 孝子, 자는 擇甫, 호는 楓潭, 花山, 본관은 안동, 관찰사 權德輿의 둘째 아들이다. 19세에 우계 성혼 문하에 들어갔으며, 1588년(선조 21) 사마시에 합격했으나 대과를 단념하고 학문에만 힘썼다. 여러 번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하다가 내시교관이 되었으나 스승 성혼이 대간에 의해 탄핵을 받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광해군 초에 세자익위사 세마가 되었다가 사퇴했다. 효행으로 나라에서 정려하였다. 저서에 『楓潭集』이 있다.
묘는 서종면 수대울에 있다. 비문은 포저 조익이 짓고 육곡 서필원이 쓰고 아들 경기가 전하였다. (서종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