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金炳㴤, 1824~1888)
 
   조선후기 문신 자는 範初, 호는 小山, 시호는 孝文, 본관은 安東, 좌의정 金弘根의 아들로 이조판서 金逌?에게 입후되었다. 1848년 증광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 1851년에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1852년 홍문관 수찬, 1853년 규장각 직각, 1856년 성균관 대사성, 1857년에 홍문관 부제학, 1858년 규장각 직제학, 1859년부터 1863년까지 한성부 판윤, 대사헌, 이조참판, 형조판서, 예조판서, 경상도 관찰사, 좌참찬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1863년 흥선대원군 집정 이후 병조판서, 이조판서, 의정부 좌참찬 등을 역임하고 1875년 한성부 判尹을 지냈다. 개군면 향리 근처 앙덕리에는 김소산의 별장이 있었다. 소산은 1882년 임오군란 때에 낙향하기도 하고, 다시 상경하여 관직에 있다가 물러난 이후 가솔들과 함께 낙향하였다. 묘는 개군면 향리 산41-5번지에 있다. (개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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