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極善, 1878~1945) 독립유공자. 일명 金鏡德이라고도 하는데, 지평면 지평리 506번지 출신이다. 농업에 종사하면서 1919년 3월 1일 손병희 등 32명이 독립선언을 발표하고 체포되자, 가업을 접고 동지들의 뜻을 계승하여 조선독립 목적을 달성하고자 모임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을 하고 체포된 33인의 뜻을 따라 3월 12일 서린동 영흥관에서 만나 독립운동계획에 대하여 상의하였다.
이들은 조선 13도의 대표자 명의로 일명 조선총독에게 대하여 “조선독립은 동포 2천만의 요구다. 우리들은 손병희 등의 후계자로서 조선독립을 요구한다”라는 취지의 독립선언문을 종로 보신각 앞에서 낭독하고 시위하면서 한편 차상진 · 문성호가 1통을 총부에 제출하였다.
이로 인하여 일경에 체포되어 1920년 2월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김극선은 문성호 등과 함께 재판을 받아 징역 8월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8년, 1990년에 걸쳐 대통령표창,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지평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