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식과 도승


   계속되는 실정과 횡포로 민심(民心)을 잃고 있던 광해군이 재위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생기가 없고, 나라 전체가 침울한 분위기에 빠져 있었던 그 당시에 지평읍 백아곡에 있는 이식의 집 앞 넓은 바깥마당에는 여덟, 아홉 살 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올망졸망하게 모여서 싸움놀이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돌을 모아 성을 쌓고, 홍백으로 편을 갈라 머리에 두건을 동여매고 나무로 만든 막대기를 칼 삼아 휘두르며 이리저리 몰려갔다 몰려오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비록 어린 아이들의 장난이기는 하지만 제법 진지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때 얼굴이 맑고 눈이 영특해 보이는 한 아이가 책을 옆구리에 끼고 집으로 들어오다가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란을 보고 약간 이마를 찌푸리더니 그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로 이 소년이 이집의 어린 주인인 이식이었습니다.
   주인이 돌아오는 것을 보자 남의 집 앞에 돌을 쌓고, 시끄럽게 떠들며 장난하던 아이들이 어린 마음에도 미안하였던지 조금 민망해 하면서 이식을 쳐다보았습니다. 흥이 좀 깨진 분위기에서 그 무리 중에 똑똑해 보이는 한 아이가 이식에게
   “너도 용문산 스님에게 글 배우러 갔었구나.”
하며 겸연쩍게 웃었습니다.
   이식은 대답하기도 귀찮아져서 그냥 머리만 끄덕였더니, 말을 걸었던 아이도 웃으며
   “너도 책 두고 나와서 우리랑 놀자. 참 재미있단다.”
   이식은 낯을 붉히며 고개를 흔들어서 싫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이식도 그 아이들과  함께 놀고 싶었지만 너무 몸이 허약해서 아이들 틈에 섞여 놀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얼굴은 맑고 준수하였지만, 혈색이 창백하고 손발 역시 피부 속을 들여다 볼 수 있을 정도로 투명하였습니다.
   아이들도 이식이 허약해 보이고 자기들처럼 심한 장난을 감당할 수 없음을 느꼈던지
   “그냥 우리끼리 놀자. 너희 집 앞을 더럽혀서 미안하다 이따가 깨끗이 치워 놓고 갈께.”
하며 저편으로 무리를 지어 뛰어갔습니다.
   이식이 대문을 열고 들어와서 안채 중문으로 들어서니, 그 어머니 홍씨부인이 노복들에게 어떤 분부를 내리던 중에 들어온 이식을 보고 마루로 나와 반갑게 맞으며 손을 잡았습니다.
   “그래 오늘도 글공부 열심히 했느냐?”
   “네”
하고 안방으로 들어와서 매일 그렇듯이 단정히 꿇어앉아 그날 배운 글공부를 어머니 앞에서 외워 보였습니다. 한글자도 틀리지 않고 거침없이 외우고 난 이식은 힘들었는지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곧바로 자기 방으로 물러갔습니다.
   기운이 없어 보이는 모습으로 돌아가는 이식을 보고 어머니가 깊은 한숨을 쉬며 생각하기를
   ‘훌륭한 외모에 총명함까지 가진 식이가 몸이 저렇게 허약해서 큰일이구나.’
하며 탄식을 하고, 바로 여종을 불러 아들에게 주려 정성스럽게 다려 둔 보약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깊은 산골의 향반의 집이기는 하나 사람들이 착하고 어진데다가, 넉넉한 재물도 있어 모든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이 덕수이씨 집안에게 근심이 있을 리가 없었지만 오로지 하나의 근심거리가 있었는데, 바로 이식이었습니다. 늦게 얻은 외아들이고 앞으로 건강히 성장하여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할 이식이 어려서부터 몸이 많이 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홍씨부인은 항상 아들 이식의 건강을 걱정하며, 어떻게 하면 튼튼하게 키울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였습니다. 이식도 자신의 허약함 때문에 어머니에게 걱정을 끼쳐드리는 것이 항상 죄송스럽고 민망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식은 그날 보약을 마시고 나서 조용히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왜 그러느냐?”
   근심어린 얼굴로 어린 이식을 바라보며 어머니가 대답했습니다.
   “어머니께서 항상 저의 건강이 좋지 않음을 근심하시며 안절부절 못하시니, 제가 어머님 뵙기도 죄송하고 저 역시도 어떻게 하면 이같이 약한 몸을 튼튼하게 할 수 있을까 하여 그동안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오늘 용문사에서 글을 배우다가 문득 든 생각이 여러 스님들이 목탁을 두드리고 불경을 외는 것이 퍽 보기에 좋은 것 같아요”
   이식은 이렇게 말한 뒤에 잠시 말을 끊고 주저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어 이식에게 말하길
   “그렇다고 네가 중(僧)이 되겠다는 말은 아니겠지?”
하고 안색을 바꾸었습니다.
   “제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냐 네 나이 아직 열 살인데 그처럼 스님들이 하는 모양이 좋아 보인다니 아마 네 몸이 허약함으로써 생기는 자격지심 때문인가 보다.”
   비장한 모친의 말에 이식은 죄송함을 느끼며 다시 말하길
   “제가 드린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오늘 문득 생각하기에 용문사같이 훌륭한 절에서 여러 고승을 모시고 몇 달이나 몇 해를 지내면 반드시 몸도 많이 건강해지고 공부도 많이  성취할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어머님께서 잘 생각해 보시고 제가 그 용문사에 가서 있도록 해 주세요.”
하였습니다.
   홍씨부인이 어린 아들의 말을 듣고 보니 이해가 되면서도 늙어서 어렵게 얻은 어린 외아들을 슬하에서 떠나보내기가 힘들어서
   “그럼 너희 아버지께서 들어오시거든 의논을 해보자.”
하고 화제를 바꿔 인자한 음성으로 말하기를
   “집 앞에서 동네 아이들이 또 장난을 하나 보더라. 너도 나가서 즐겁게 놀렴.”
하니 이식은 어머니 말씀을 거역하지 못하며 공손한 태도로 어머니 앞을 물러나오는데 아들의 실버들처럼 연약하고 창백한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홍씨부인은 저절로 안타까운 탄식이 나왔습니다.
  홍씨부인이 다시 여종을 불러
  “도련님께서 즐겁게 놀고 있는지 몰래 보고 오너라.”
  잠시 후에 돌아온 여종이 홍씨부인에게 말하기를
  “도련님께서는 한편 구석에 비켜서서 구경만 하시는데 무슨 걱정이 계신 것같이 잔뜩 얼굴을 찌푸리시고 계십니다.”
  이 말을 들은 홍씨부인은 가슴이 답답하여
  ‘참 어떻게 방법을 찾아 봐야겠구나.’
하고 그날 밤 이식의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저 그 일을 의논하였습니다.
  “영감, 식이가 낮에 말하기를 용문사에 들어가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용문사를 들어가다니 무슨 말이오?”
  아버지가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홍씨부인은 낮에 아들에게 들은 말을 남편에게 이야기하며
  “내 생각에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지만…..차마 그렇게 하기에는…..”
하면서 고인 눈물을 닦았습니다.
  “울지 마시오. 식이의 건강에 대하여는 나도 많이 걱정하고 있었소.”
   이식의 아버지도 그 어머니 못지않게 아들의 허약한 건강을 염려하고 있었던 터라 두 노부부는 저녁밥 먹는 것도 잊고 아들에 대해 의논하였습니다.
   “식이를 용문사로 보내기로 합시다. 다행히 그 절에는 고승이 계시니 학문도 자연스럽게 늘어갈 것이오.”
   홍씨부인은 자신이 먼저 제안하기는 했지만 막상 결정을 이렇게 하고 보니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가 없어서 남편에게
   “참 당신은 야속도 하십니다. 그 어린 것을 우리 슬하에서 기르지 못하고 떠나보낸 후에는 우리 두 늙은이만 남겠네요.”
   “그게 무슨 말이오, 세상에는 자식이 죽어서 떠나보내는 사람도 있는데….”
   아내를 나무라면서도 말하는 이식의 아버지의 눈에도 이슬이 맺혀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식은 소망하던 대로 용문사에 가서 몸을 요양하는 한편 학문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용문사의 숲 속을 거닐고, 근처 맑은 시냇가에서 정갈히 세수를 하고 나면 곧 아침 예불을 알리는 용문사의 법고(法鼓)소리가 크게 울렸습니다. 불경을 외는 스님들의 경건한 태도와 가슴을 파고드는 깊은 설법은 어린 이식에게는 훌륭한 수양이 되었고, 규칙적인 생활과 깊은 산중의 맑은 공기로 약하였던 몸이 점점 좋아졌습니다.
   더욱이 스승이 되는 유염(惟念)스님은 학식이 깊고 덕이 높아 많은 감화를 주니 이식도 또한 스님을 부모같이 공경하고 우러러보았습니다.
   그렇게 여섯 해가 지나고, 이식의 나이도 이제 열여섯 살이 되어 건장한 소년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학문도 발전하여 기본적인 서책을 모두 읽고, 이제 주역(周易)까지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뜻이 어렵고 오묘하여, 깊이 생각하며 공부하여도 그 뜻을 깨닫기가 힘들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스승인 유염스님까지 병을 얻어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이식은 스승의 건강을 몹시 걱정하면서도 밤마다 등잔불을 켜고 열심히 주역을 공부했습니다. 병중에서도 스승 유염은 제자의 건강이 걱정되어
   “좀 쉬어가며 하거라.”
하였으나, 이식은 더욱더 열심히 책을 볼 뿐이었습니다.
   이식이 생각하기에 스승님에게 학문을 배운 지도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깨우치지 못한 것이 많은데 이제 스승이 위중한 병으로 자리에 누웠으니 앞으로 누구에게 학문을 배워야 할까 하며 걱정하며 밤새우는 일이 많았습니다.
   스승인 유염스님이 그런 이식을 불러 말하기를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 네 스승이다. 비록 금수(禽獸)나 이름 없는 나무에게라도 배울 것이 있는데 어찌 내가 살고 죽음에 근심을 하느냐. 그러니 내가 극락에 가더라도 크게 실망하지 말고 모든 만물에게 배우거라.”
하며 타이르니 이식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며 스승을 안심시키고 스스로도 정말 스승의 말씀을 잊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며칠이 지나 유염은 이식을 다시 불러
   “식아, 다시 한번 너에게 부탁할 것은 세상 어떤 사람에게든지 배울 생각을 하고 남을 업신여기지 말거라.”
하는 말을 남기고 바로 숨이 끊어졌습니다.
   존경하는 스승을 잃은 이식의 비통함은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유염스님의 장례는 스님들과 인근 마을 사람들이 슬퍼하는 가운데 장엄하게 거행되었고 용문산 좋은 땅에 스님을 안장하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의 마음도 다시 평상을 찾았으나, 한창 학문 연구에 매진할 시기에 훌륭한 스승을 잃은 이식은 늘 스승을 그리워하였습니다.
 
   이식은 이제 스승도 없이 혼자 주역을 아무리 읽고 또 읽었지만 도저히 그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스님들이 깊이 잠든 숨소리를 들으면서도 공부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이식은 언제나처럼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스님들은 잠을 자고, 주변은 적막하여 들리는 소리라고는 절 앞 개울의 물소리뿐이었습니다. 이식이 벽에 몸을 기대고 앉아서 가만히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어 있는데, 문득 어떤 사람이 탄식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식이 이상하게 생각되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남루한 차림의 부목승(負木僧)이 이식의 등잔불에서 나오는 희미한 빛 아래서 자신의 누더기를 기우며 연방 혀를 차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식이 처음에 업신여기는 생각이 들어
   ‘아마 제 신세가 그러하니 혀를 차는 것이겠지’
하고는 자신의 깊은 사색을 방해하는 그 부목승의 행동에 화가 났지만 이내 측은한 생각이 들어서
   ‘신세타령도 할 만하지. 늙어서 하루 종일 그 많은 나무를 해 오면서 누더기를 기워 입어야 하니 가엾구나.’
하며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나 부목승의 탄식은 이식이 생각한 것과 같이 간단한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부목승은 힐끗 이식을 바라보며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모양에 잠이 든 줄 알았는지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어린 서생(書生)이 끊임없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애쓰나 깨닫는 바가 극히 적은 모양이니 참으로 딱하구나. 저 젊은이가 헛되이 힘을 허비하는 것이 보기 딱하지만 바로 일러주지 못하니 더욱 딱하도다.”
  이식이 그 소리를 듣자 발끈했으나 곧 그의 머리에 스치는 모습이 있으니 스승 유염의 유언이었다.
  “아무리 초라한 사람이라도 업신여기지 말고 배움을 청하라.”
고 했던 인자한 목소리였다.
   이식은 화를 꾹 참으며 생각하기를
   ‘내가 본래 남을 업신여기는 성질이 있어서 스승님께서도 특별히 지적하여 경계하라 하셨나 보다.’
하며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습니다.
   부목승이 또 말하기를
   “저와 같은 성품에 좋은 스승만 만났으면 일취월장할 것인데…안타깝구나.”
하며 다시 탄식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이식은 새벽 일찍 숲 속을 산책하고 나서 개울에서 얼굴을 씻고 수건으로 손에 묻은 물을 닦아 내는데 저편 비탈진 언덕길에서 한 노승이 등에 나무를 가득 지고 비틀거리며 내려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노승은 아침 공양 전에 나무를 한짐 해두려는 듯 보였지만 약한 몸에 너무 많은 나무를 올렸기 때문에 자그마한 체구는 짐 밑에 깔려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이식은 가엾은 생각이 들어 얼른 달려가 나뭇짐을 받쳐 주었습니다.
   중은 잠시 앞으로 쓰러질 듯이 끄덕거리던 몸을 겨우 가누고,
   “누구신지 고맙습니다.”
하고 중얼거리는데 그 음성이 이식에게는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이제는 건장하고 힘도 넘치는 소년이 된 이식은 두 손으로 아름이 넘는 나뭇단을 번쩍 들어 길 위에 내려놓고 어리둥절해 하는 노승의 손목을 꽉 잡았습니다.
   “대사님, 대사님께서 오늘 새벽에 하신 말씀을 제가 분명히 들었습니다. 대사님은 아마도 제가 자는 줄 아시고 하신 말씀이었겠지만, 사실 저는 자지 않고 깊이 생각 중이었습니다.”하고 잠깐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어 말하길
   “유염대사님께서 입적(入寂)하신 후에 저는 사방으로 스승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오늘 새벽 대사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대사님이야말로 필시 역리(易理)를 아시는 분이 분명하니 어리석은 저에게 가르침을 주시기를 원하옵니다.”
며 간청하였습니다.
   부목승이 허허 웃더니
   “이 몸같이 가난하고 더러운 평범한 중이 무엇을 알겠소. 새벽에 제가 중얼거린 것을 들으셨다니 민망하나 그저 서생의 몸으로 공부하는 일이 힘들고 정신이 피곤할 것 같아 염려하여 한 말이오.”
하였습니다.
   이식이 부목승이 한 말은 들은 척도 안하고 더욱 앞으로 다가서며
   “그렇지 않습니다. 가뭄에 비를 기다리듯 학문의 이치에 굶주린 몸이니 사양하지 마시고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나 중은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천만의 말씀이오. 이 몸이 무지하기 짝이 없는데 주역을 가르치다니요 말도 안 됩니다.”
한 후, 급하게 나뭇짐를 메고 가려고 하였습니다.
   이식은 답답하였으나 다시 스승님의 유언을 생각하고 부목승에게서 나뭇짐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묻기를
   “그러면 오늘 새벽에 말씀하시기를 바로 일러 주지 못하니 딱하다 하셨는데 그것은 무슨 뜻이옵니까?”
   이식이 공손한 태도로 정색하며 말하니 그때서야 부목승도 숨길 수 없었던지 마지못해 대답했습니다.
   “그처럼 말씀하시는데 더 거절할 수가 없구려. 참 저같이 천한 중을 업신여기지 않고 끝가지 대접해 주시는 태도야말로 정말 감탄할 만합니다. 그래야지…암 그래야 뜻한 바를 이루어 큰일을 성취하지….”
하며 혼자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만약 주역을 읽다가 의문이 나는 부분을 표시해 두었다가 조용한 곳에서 나한테 물어주시오.”
하며 드디어 승낙을 하였습니다.
   이식은 크게 기뻐하며
   “고맙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나뭇단을 자신이 지고 절까지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의문이 나는 곳이 있으면 표시를 해 두었다가 노승을 찾아다니면서 울창한 숲이나 조용한 개울가 같은 곳에서 조용히 질문을 하면 노승은 늘 정확하고 명쾌하게 답을 주었습니다.
   그때마다 이식의 마음은 목마른 여름날 시원한 냉수를 마신 것처럼, 하늘의 먹구름이 걷혀 지는 듯이 상쾌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뻤습니다.
   어느 날, 이식은 드디어 노승 앞에 공손히 절을 하며
   “스승님으로 모시게 해 주십시오.”
하며 스승이 되어 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노승은 거듭 사양하였으나 이식의 열정에 탄복하여 허락하였습니다. 이식은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이제부터는 일개 나무하는 중과 양반집 귀한 도령이 은밀하게 사제의 정을 나누게 된 것입니다.
   이식과 노승이 서로 통하면서부터 이식의 학문도 일취월장하여 놀랍게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즐겁게 공부하기를 일 년, 다음해 따뜻한 어느 봄날에 두 사제는 푸른 잔디 위에 마주 앉아 한가롭게 종달새소리를 들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도승이 문득 생각난 듯이 이식을 돌아보고
   “이제 학문도 어느 정도 완성했으니 과거시험을 보는 것이 어떠냐?”
하고 권하였습니다.
   이식도 전부터 그렇게 하고 싶은 터라 반갑게 생각하면서도 민망스러워서
   “아직  멀었습니다. 어떻게 제가 감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고 사양하였지만, 노승은 한번 빙긋이 웃더니
   “그렇지 않다. 빨리 용문사를 내려가 부모를 안심시키고 오랫동안 쌓인 불효를 풀거라.”
하며 재차 권하였습니다.
   이식도 마지못해 행장을 꾸린 후에 오랫동안 같이 지내던 여러 스님들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산을 내려가면서 스승인 노승에게는 절을 하고 말하기를
   “이렇듯이 저를 보살펴주신 은혜를 차마 잊을 수가 없으며 후일에 제가 입신(立身)하더라도 정말로 잊지 않겠습니다.”
하고 눈물을 흘리니 스승도 그의 손을 잡은 후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부디 몸조심 하거라.”
하며 산문 밖까지 배웅하며 이별을 나누었다. 이식도 차마 떠나지 못하여 주춤거리는데 집에서 이식을 마중 나온 종이
   “아까부터 마님께서는 대문 밖에서 도련님이 돌아오시기를 기다리십니다. 어서 가서 뵈셔야죠.”
하며 이식의 짐을 챙기는 것이었습니다.
   비로소 이식도 발을 떼기 시작하는데 노승이 따라오며 중요한 말을 전하였습니다.
   “아직은 잘 모르겠으나 아마 너에게 꼭 일러두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구나”
잠깐 말을 끊으니 이식이 궁금하여 다시 돌아서서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하니 노승이 다시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내년 정월에는 좋은 일로 너를 찾아갈 것이니 그때에 이야기를 해주겠다.”
   그리고서 둘은 헤어지고 이식은 정들었던 용문사를 떠났습니다.
   때는 경오년(庚午年)이 되어 전국에서 몰려든 늙고 젊은 선비들이 각자 나름대로 장원급제를 목표를 가지고 올라와서 서울은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이식도 그 선비들 무리 안에 있었습니다.
   이식은 용문산에서 스승과 이별하고 본가에 돌아와 기뻐하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니 따뜻함을 느끼고 오래 있고 싶었으나 과거시험이 머지않았기에 오래 머물지는 못하고 바로 서울로 올라온 것이었습니다.
   “그때 연약한 너를 용문사에 보내고 밤잠도 못자고 걱정하였는데 이제 너의 몸이 이렇게 건강해진 것을 보니 어디를 보내도 마음을 놓을 수 있겠구나.
   그동안 몰라보게 늙은 어머니 홍씨부인은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아들을 대문 밖까지 배웅하며 아들의 등을 쓰다듬었습니다. 문 밖 넓은 마당에는 예전처럼 마을 아이들이 모여 싸움장난을 하는 것을 보고 이식은 칠 년 전 어느 날 어머니가 나가서 아이들과 같이 놀라고 하였으나 차마 그 무리에 섞여 놀지 못하고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던 자신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었습니다.
 
   자신감으로 가득 차서 서울에 온 이식은 그해 문과에 장원급제를 하였습니다. 장원의 영예를 얻고, 시골의 부모님을 서울로 모셔 오고, 서울의 명문가와 혼인도 하여 덕수이씨 가문에 영광이 넘쳐흐르고 있었지만, 항상 마음 한편에는 용문사의 부목승인 스승 생각뿐이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영화로움을 누리고 있는 것은 모두 스승님 덕분이다.’
하며 용문사를 몇 번이나 찾아갔었고 사람들을 시켜 수소문도 하였으나 용문사의 대답은
   “그 스님은 지난 봄에 절을 떠났습니다.”
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식은 이제 할 수 없이 노승이 약속한 정월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이듬해 정월이 되었고, 어느 날 홀연히 스승인 노승이 이식의 앞에 찾아왔습니다. 이식은 크게 기뻐하며, 부모님께도 인사를 드리고 몸소 대접을 융숭하게 하며 지난 일들을 회고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 노승이 작별을 고하니 이식이 매우 섭섭해 하면서
   “보잘 것 없던 제가 오늘날 이런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은 모두 스승님 덕분입니다.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전할 수도 없습니다. 제가 부족함 없이 모실 터이니 부디 그냥 저의 집에서 평생을 함께 보내셨으면 합니다.”
   노승이 인자하게 웃으며
   “부족함 없는 생활보다는 한가롭게 뜬 구름과 학을 벗 삼아 갈대처럼 방랑하는 것이 편합니다.”
하며 고개를 저으니, 이식도 하는 수 없이
   “그러면 작년 봄 저에게 일러 주시려던 것은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고 물으니 노승이 답하기를
  “병자년(丙子年)에는 나라에 큰 난리가 일어날 것이니 공은 필히 일가를 이끌고 영춘(迎春)땅으로 피해 있으면 화를 면할 것이오.”
하며 그곳의 지리와 형세를 일러 주었습니다.
   이식은 고맙게 스승의 말씀을 듣고 나서
   “스승님, 그럼 언제 또 뵈올 수 있겠습니까?”
하니 노승은 태연히 만나게 될 날짜와 시각을 알려주고는 그 시각에 관서(關西)땅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홀연히 떠나 버렸습니다.
   이식은 곧 노승이 말한 대로 병자년에 피난할 준비를 하기 위해 영춘 땅에 집을 짓고 세간을 장만하였습니다.
   몇 해가 지나고 병자년이 되자 과연 노승이 말한 대로 나라에 큰 전란이 일어났는데 바로 ‘병자호란(丙子胡亂)’이었습니다. 미리 대비했던 이식은 가솔들을 이끌고 준비해 놓은 영춘 땅으로 피해 가서 난리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노승의 말이 그대로 되는 것을 본 이식의 가족과 사람들은
   “그 스님이야 말로 보통 사람이 아니다.”
라며 크게 놀랐습니다. 이런 소문이 널리 퍼져서 당시의 임금인 인조에게까지 들리게 되었습니다. 어지러운 나라를 수습하고자 노력하던 인조는 신하들에게 명을 내려 그 노승을 찾아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들을 풀어 찾으려고 해도 노승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이식은 임금을 뵙고
   “그 노승을 제가 약속한 어느 날에 관서에서 만나기로 하였으니 그때 신을 관서로 보내주시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고 하였습니다. 당시 이식은 벼슬이 이조판서에 이를 정도로 임금이 신임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약속한 날이 다가오자 임금에게 허락을 받아 스승인 노승을 만나러 관서로 향하였습니다.
 
   관서에 도착한 이식은 혹시나 약속한 날 이전에라도 노승을 만날 수 있을까 하여 관서에 있는 각 사찰을 두루 다니며 알아보았으나 스승의 자취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윽고 약속한 그날이 되어 이식은 두 중이 메는 담여를 타고 묘향산에 있는 묘향사를 오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스승님께서 약속한 때가 되었건만, 아직 뵙지를 못하니 이걸 어쩌면 좋으냐.”
하며 탄식을 하며 흔들리는 담여에서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이식이 문득 옛일을 떠올려 보니 벌써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열 살에 용문산에 들어가서 용문사 유염대사를 스승으로 모셨고, 그 스승의 유언을 명심하였던 까닭에 일개 부목승을 만나 스승으로 섬길 수가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지금의 자신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또 이식 자신이 장원급제할 당시에 찾았을 때는 스승이 건강한 모습이었으나 그동안 혹시 병이나 나지 않았나 또는 죽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며 슬퍼졌습니다.
   “혹시 그렇게 되셨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렇게 되신 모양이야. 아니면 스승님이 만나자는 시각에 늦으실 분이 아닌데…”
   비록 많지 않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스승으로 진심을 다하여 모셨던 이식이 생각하기를
   ‘어느 절간 외로운 구석에서 병이 들어 계시면 어떻게 하나…스승님이야말로 나의 평생의 은인이신데…’
   거듭되는 걱정에 이식의 눈앞에는 어떤 쓸쓸한 산사(山寺) 한쪽 모퉁이에 쓰러져 기진맥진해 있는 스승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르며 초조한 마음에 눈을 번쩍 떴습니다.
   이식이 눈을 떠보니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 했습니다. 다시 한번 정신을 차리고 눈을 크게 떠 보니 앞에 자신이 타고 가는 담여를 메고 앞잡이를 하며 가는 중이 바로 그토록 기다리던 스승이었습니다.
   이식은 급히 담여를 멈추게 한 후에 담여에서 재빨리 뛰어내려와 노승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무슨 말도 나오지 않고 반갑고 감격의 눈물만 하염없이 흘릴 뿐이었습니다.
   “스승님 이게 웬일이십니까?”
  이식이 간신히 목을 추스르고 말했습니다.
   “웬일이라니. 오늘 이 시각에 만나기로 공과 약속하지 않았소? 약속한 시각에 약속한 장소에서 상봉하는 것인데 뭘 그리 놀라시오.”
하며 침착하게 이식을 일으켜 세운 후에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하기를
   “용문사의 부목승이 묘향사의 담여승이 되었거늘. 의아해 하지 마시오. 허허허”
하며 웃었습니다.
   이식이 돌아보니 뒤잡이를 메고 오던 중은 의외의 광경에 놀라 넋 빠진 사람처럼 담여의 뒷다리를 움켜잡고 멍하니 이식과 노승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식은 우선 스승의 아래 위를 훑어보고 건강한 풍모가 용문사에 있을 때와 별로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여태까지 머릿속에서 떠올린 몹쓸 생각을 후회하면서 안심을 하였습니다.
   이식은 스승을 몸소 부축해 산을 올라 묘향사에 도착하였습니다. 높으신 이조판서 대감이 오셨다고 절 사람들 전체가 정신이 없는 가운데, 이식은 조용히 방 하나를 깨끗이 치우게 하고 스승과 함께 사흘을 머물며 설득하기를 자신과 함께 한양으로 가서 살자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홀로 다니시다가는 나중에 외롭게 돌아가실 것입니다. 부디 저와 함께 가시지요.”
   이식이 이렇게 재차 권하자 노승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이것이 다 하늘의 뜻이니 나는 하늘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하면서 함께 있던 사흘 동안에도 여러 가지의 도(道)에 관하여 설법을 이식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이식이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
   “스승님의 이 넓으신 가르치심을 제가 어찌 다 알겠습니까?”
하니 노승은 다시 위로는 나라의 일로부터 아래로는 이식의 집안에 대한 것들까지 소상하게 미리 이야기해 준 후에
   “내가 알려준 대로만 하시면 길이 평안할 것입니다.”
하며 이식의 손을 어루만졌습니다.
   이렇게 두 사제의 꿈같은 사흘이 지나고 노승이 떠날 채비를 하는데 이식이 묻기를
   “그럼 이다음에는 어디서 스승님을 뵐 수 있겠습니까?”
하니 노승이 슬픈 목소리로
   “이게 마지막이요.”
대답한 후, 고개를 숙였습니다.
   묘향산에서 마지막으로 스승인 부목승과 이별한 이식은 한양으로 돌아와 노승이 일러준 나라에 관한 일들을 임금에게 올리고, 스승에게 배운 도(道)를 널리 전하니 깨닫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이식의 자(字)는 여고(汝顧), 호(號)는 택당(澤堂)이라 하고, 나라에서는 그에게 문전공(文傳公)이란 시호(諡號)를 내려 그의 공덕을 칭송하였습니다.
 
 
출처 : 월간야담 5(윤백남, 경문사 1936 ),정리 : 양평구비문학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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