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쓴 명당자리

   옛날에 경기도 양평 땅에서 한 영감이 평생 팔자 좋게 살다가 죽었습니다. 집안이 부자라서 이름 있는 지관을 불러 좋은 산소자리를 알아보게 하였습니다. 산을 둘러보고 돌아온 지관이 말하기를 마침 가까운 곳에 다섯용(龍)이 엎드려 있는 명당자리가 있다고 하여 가족들이 따라가 보니 역시 명당자리가 틀림없었습니다.
   산소자리를 보려고 갔을 때에 죽은 영감의 시집간 딸도 함께 따라가서 좀 신경이 쓰였으나 역시 자기 자식인데 뭐 별일이야 없겠지 하며 지관은 방위(方位)며 안산(案山)까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다음날 지관이 일꾼들을 데리고 그 명당자리로 가서 산역을 하려는데 벌써 어느 놈이 전날 밤에 그 자리에다가 누군가의 뼈를 묻어버린 것입니다. 졸지에 명당자리를 잃은 지관은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했습니다. 그렇기에 매장하기 직전에야 산소자리를 알려야 하고, 미리세세한 자리를 알려주지 않는 것이 풍수의 상식인데, 섣불리 미리 드러냈다가 크게 당한 것입니다.
 
   지관은 곰곰이 생각컨대, 이런 짓을 할 사람은 틀림없이 죽은 영감의 딸년이 제 서방하고 한 짓이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지관의 생각대로 시집간 딸이 그렇게 발복(發福)할 명당자리라면 친정에 줄 것이 아니라 시집에서 차지해서 영화를 누리고 싶은 욕심에 그런 짓을 벌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욕심 많은 딸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원래 산이 클수록 거기에 걸맞게 산신제도 지내고 장례도 장중하게 지내야 하는 것인데 한밤중에 두 연놈이 달구질소리 하나 없이 몰래 뼈만 묻어 놓고 가니 그 산의 산신은 화가 머리끝까지 뻗쳤습니다.
   그 명당자리에 엎드려 있는 다섯 용들도 역시 화가 날 대로 났습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지관이 엄숙하게 가족들에게 입을 열었습니다.
   “여기 보기 드문 명당자리를 이렇게 도둑을 맞았으니 이제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이렇게 된 바에야 이 자리를 포기하고 다른 방도를 찾아야겠습니다.”
   그러면서 지관은 그 명당 대신 마주 보이는 산으로 가서  뱀 다섯이 엎드려 있는 보잘 것이 없는 곳을 다시 산소자리로 잡았습니다. 광중을 짓고 이제 운구(運柩)를 시작하는데 우선스물 네 명의 향도군(香徒軍)에게 모조리 장식한 고깔을 씌웠습니다. 그리고 동자 백 명을 동원하여 모두 꽃모자로 치장하고 상여 앞뒤서 줄을 잡고 끄니 행렬이 장대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또 그 화려한 행렬 뒤로 농악대를 동원하여 ‘니나니 쿵자쿵’ 불고 두들기고 야단을 떠는 중인데, 그 모습을 건너 산에서 산신과 다섯 용이 고개를 들고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지관은 이때 상여꾼들에게 명하여 보통 상여소리가 아닌 다른 상여소리를 시켰습니다.
   “어화 넘자 너화, 오룡(五龍)은 변해서 오사(五蛇)가 되고, 어화 넘자 너화, 오사가 변해서 오룡이 된다. 어화 넘자 너화”
   이 소리를 듣고 있던 다섯 용이 그만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그리고는 단숨에 그 맞은편 산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리고서는
   “이놈 뱀들아 저리 비켜라.”
하니 뱀들이 무서워서 꽁지가 빠지게 도망을 쳤습니다.
   다섯 용들은 뱀들이 있던 자리를 빼앗아 엎드려 누웠습니다. 다섯 용들의 정기가 모두 이 땅으로 옮겨와 버린 것입니다.
   용들에게 자신들의 자리를 빼앗긴 다섯 뱀들은 할 수 없이 다섯 용들이 있었던 빈자리에 가서 의지하니 이제 불쌍하게 된 것은 오히려 딸의 시집 조상의 유골이었습니다.
   또 지관과 가족들은 큰 소를 잡아서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니, 후한 대접을 받은 산신령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리하여 크고 거창하게 치룬 산소자리에서 용과 산신령의 정기를 받았는지 딸의 친정집은 점점 더 좋은 일만 생기는데,  딸의 집은 날이 갈수록 기울어서 명당자리를 훔친 것에 대한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출처 : 한국의 전설(박영준 편, 1972),정리 : 양평구비문학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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