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녀석은 가난뱅이 중에서도 최고로 가난하게 살 팔자구먼. 이놈 혼자만 가난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이놈과 같이 있는 사람들까지도 모두 거지로 만들어 버릴 관상이네 그려.”
하더랍니다.
그래서인지 부자였던 삼촌이 석숭을 집에 들이고 나서부터는 웬일인지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고 가세가 기울어만 갔습니다. 관상쟁이가 했던 말을 들어 알고 있었던 삼촌은 점점 석숭이 자신의 집에 있는 것이 불편해졌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석숭을 불러 약간의 돈을 주며
“석숭아, 내가 하는 일마다 망해서 어찌할 수가 없는데다가, 너도 이제는 혼자 살 수 있을 만큼 자랐으니 집에서 나가서 어디를 가든지 가거라.”
하니 석숭이 주는 돈을 받아 들고
“알았습니다. 삼촌 이제 혼자 살아가렵니다. 안녕히 계세요.”
하고 삼촌 집을 나와 정처도 없이 길을 떠났습니다.
잠시 후에 누가 나오는데 보니 한 여자가 소복을 입은 채로 대문을 열고 나와서
“무슨 일이십니까?”
“날이 저물어서 그러니 하룻밤만 묵어갈 수 있게 해주시오.”
소복 입은 여자가 고맙게도 하룻밤 쉬어가라며 사랑으로 석숭을 안내했습니다.
잠도 오지를 않아서 멍하니 천장만 보고 있는데 아까 그 소복 입은 여자가 음식을 가지고 들어와서 석숭에게 주면서
“변변하지는 않지만 좀 드십시오.”
하니 석숭이
“가져오신 음식을 보니 제사 음식 같은데 누구 제사입니까?”
물으니 집주인이 우울한 표정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오늘이 죽은 제 남편의 기일(忌日)입니다. 제가 남편이 죽고 나서 혼자 살아서 지나가는 객들을 집에 들이지 않아야 하는데 댁의 사정이 그런지라 들어오시게 하였습니다.”
하니 석숭이 미안해졌습니다.
“어디로 가십니까?”
하자 석숭이 대답하기를
“제가 팔자가 고약해서 가난할 뿐만 아니라 제가 가는 곳마다 망하게 하니 세상이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동해의 용궁에 가서 용왕님한테 왜 나한테는 이렇게 복이 없는지 그 이유를 물어보러 갑니다.”
하니 그 집주인이 무릎을 치며 말하길
“그거 참 잘됐네요. 용왕한테 가거든 제 말씀도 좀 전해주구려.”
“무슨 말이십니까?”
석숭이 물으니 그 집주인이 말하는데 사실 그 집주인의 본 모습은 사람이 아니라 이무기로 보통은 천 년이 지나면 변해서 용이 된다는데 삼천 년이나 이무기로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왜 자기가 용이 못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용왕한테 물어봐 달라고 하였습니다.
“용왕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복을 받아 잘 사는데 왜 내 신세만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저도 남들처럼 살게 해 주십시오.”
하며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용왕이
“너는 원래 타고난 복이 전혀 없구나. 그렇지만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너가 돌아다니다가 어제 제삿밥을 얻어먹은 집 여자와 함께 살면 앞으로는 복이 있을 거다.”
며 말해주니 석숭은 무척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 정말 그렇습니까? 고맙습니다. 그럼 저는 이제 그 여자와 살면 되니까 더 이상 여쭐 것이 없고, 다른 것을 하나 여쭤 보겠습니다. 여기 용궁에 오다가 이무기를 만났는데 그 이무기가 삼천년을 기다려도 용이 되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된 영문인지를 용왕님께 여쭤 달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말을 전할까요?”
하고 석숭이 다시 용왕에게 물었습니다. 용왕이 질문에 답하기를
“허허, 그 고얀 놈이 욕심이 많아서 그런 것이다. 다른 이무기들은 여의주를 두 개씩만 가지고 있는데 고놈은 여의주를 세 개나 가지고 있어서 수천 년이 지나도 용이 되기는 다 틀렸다.”
“용왕님께서 그러시는데 다른 이무기들은 여의주가 두 개뿐이어서 용이 될 수 있는데 당신은 여의주를 세 개나 가지고 있어서 앞으로도 용이 되지 못할 거라고 합니다.”
하니 그 이무기가 무릎을 치며
“정말 그래서 그런가 보다.”
며 여의주를 하나 꺼내서 석숭에게 주었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부엌에 있는데 부엌 바닥에서 덜컥거리는 소리가 나서 바닥을 파보니 세상의 온갖 금은보화가 가득한 상자를 발견했습니다.
전에 이무기한테 받은 여의주에다가 금은보화까지 갖게 된 석숭은 이제 천하제일의 갑부가 되어 떵떵거리면서 살게 되었고, 날이 갈수록 재물이 점점 늘어나니 욕심이 저절로 생겼습니다.
‘이 정도의 재물이면 천자(天子)도 하겠구나. 돈으로 군사를 사서 나도 천자가 한번 되어볼까?’
고 생각하며 재물을 풀어 군대를 만들고 훈련을 시켰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빌어먹던 석숭이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 천자의 자리까지 욕심내며 위험한 짓을 하고 있는데 석숭을 유심히 지켜보던 산신령이 석숭을 말리기 위해 평민으로 변장을 하고 석숭을 찾아갔습니다.
“이렇게 호화로운 집에 보물이 가득한 것을 보니 당신은 참으로 부자입니다.”
고 산신령이 치켜세워주니 석숭이 으스대며
“그렇습니다. 아마 제가 천하에서 제일가는 부자겠죠?”
하고 웃었습니다.
산신령이 돌아가면서 석숭에게 자신도 조금 사는 편인데 언제 자기 집에 놀러 와서 구경이라도 한번 하라면서 돌아갔습니다.
석숭은 자기에게 그렇게 말을 할 정도라면 저 사람도 엄청나게 부자일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한번 찾아가서 구경하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석숭은 세상에서 하나뿐이라는 귀한 산호지팡이를 들고 한껏 치장을 하고서는 얼마 전에 왔던 손님이 일러 준 집에 방문했습니다.
막상 와서 보니 집이 자기가 사는 집보다도 훨씬 작고 귀한 보물들도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반갑게 맞아주는 집주인과 인사를 하고 식사도 하고서 보니 들락날락하던 아이들이 그랬는지 자기가 가져갔던 산호지팡이가 완전히 부서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석숭이 그 광경을 보고 놀라면서 말하기를
“어이쿠, 이 내 귀한 산호지팡이가 이렇게 산산조각이 났으니 어쩌면 좋습니까?”
하니 산신령이 웃으며
“뭐 그까짓 지팡이 하나 부러졌다고 난리십니까? 저를 따라오십시오.”
산신령이 석숭을 데리고 어떤 광으로 가서 문을 열고서는
“여기에 있는 지팡이를 맘대로 가지고 가셔도 좋습니다.”
석숭이 광 안을 보니 자신의 산호지팡이와 똑같은 지팡이가 광에 가득 차 있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다는 귀한 산호지팡이를 이렇게나 많이 가지고 있다니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석숭은 산호지팡이 몇 개를 챙겨 도망치듯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이 대궐같이 크고 화려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집과는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크거나 화려하지는 않았습니다. 집주인과 점심을 먹는데 집주인이 말하기를
“저희 집은 뭐 그렇게 대단한 구경거리는 없습니다만 식사 후에 별당에 가서 부처님이나 한번 보시고 가시죠.”
식사 후에 별당으로 집주인과 같이 가보니 커다란 팔을 벌리고 서 있는 금불상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금불상입니다.”
고 석숭이 칭찬하니
“내가 가진 보물이라고는 이 금불상 하나밖에는 없습니다.”며 갑자기 칼을 꺼내 금불상의 팔뚝을 자르는 것이 아닙니까?
석숭이 그 광경에 놀라서 주인을 말리려다가 더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분명히 팔뚝을 잘라 금불상의 금덩어리 팔뚝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데 금불상의 금팔뚝이 저절로 다시 생겨나는 것이었습니다. 집주인이 다시 팔을 자르니 또 나오고 자꾸 자르는데도 계속 금팔뚝이 새로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바닥에는 금덩어리 팔뚝이 여기 저기 떨어져 있었습니다.
집주인이 석숭에게
“이 떨어진 금덩어리를 마음대로 가지고 가십시오. 난 필요하면 또 잘라서 쓰면 되니.”
하며 허허 웃었습니다.
석숭이 금팔뚝 몇 개를 나귀등에 싣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세상에 내가 제일 부자일 줄 알았더니 아닌가 보구나. 저번에 만났던 산호지팡이를 잔뜩 가지고 있던 사람이나 오늘 만난 이 사람이나 참 대단한 부자다.’
하며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집주인이 석숭에게 겸손하게 말하기를
“내 재산이라고는 이것뿐입니다.”
하니 석숭이 기가 죽어 집에 돌아와서는 세상에 자신보다 부자가 저렇게 많은데 건방지게 자신의 재물만 믿고 천자가 되려는 마음을 먹었으니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자가 되려는 꿈을 버리고, 군대도 없앤 후에 가진 재산에 만족하고 살다 죽었다고 합니다.
천하제일의 부자 석숭(石崇) 이야기
중국 서진(西晉)시대에 살았던 부자의 대명사인 석숭(石崇)이 부자가 된 이야기입니다.
석숭은 어려서 부모를 모두 잃고 삼촌한테 몸을 의탁해서 살았습니다. 석숭이 어렸을 때 지나가던 한 관상쟁이가 석숭의 관상을 보고 말하기를
이렇게 석숭이 길을 떠난 어느 날, 날이 저물어 유숙을 하려고 이집 저집 찾아다니는데 커다랗게 잘 지은 기와집이 보여 그 집 대문 앞에서 주인을 불렀습니다.
다음날 아침까지 배불리 얻어먹은 석숭이 집주인인 여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다시 길을 떠나서 가다 보니 또 날이 저물었습니다. 또 어느 집에 부탁해 유숙을 하고 있는데 그 집주인이 석숭을 보고 물었습니다.
이무기인 집주인의 도움으로 바다 속의 용궁에 도착한 석숭이 용왕을 만나서 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용궁에서 돌아온 석숭이 다시 집주인 이무기를 만나서 전하기를
이무기가 준 여의주를 잘 받아서 품에 넣고 이무기와 헤어진 석숭은 용왕의 말대로 하기 위해서 다시 전에 묵었던 소복 입은 여자의 집으로 갔습니다. 석숭을 다시 만난 집주인 여자가 반갑게 맞이하며 그날부터 석숭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산신령이 또 이전과는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변장해서 다시 석숭을 찾아갔습니다. 석숭의 집과 재물을 보고 칭찬을 늘어놓고서는 자신도 조금 사는 편이니 와서 구경하라고 했습니다. 며칠이 지나 석숭이 나귀를 타고 그 사람이 일러 준 집을 찾아갔습니다.
며칠이 지나 역시 산신령이 변장한 또 한 사람이 석숭을 찾아와서 똑같이 집으로 초대하여 가봤더니 이 집은 끝도 보이지 않는 수만 리 벌판에 온갖 귀한 약초며 산삼이며 가득 차 있는데
출처 : 한국구비문학대계(제보자 : 박종빈, 서종면 정배리 57세 남),정리 : 양평구비문학조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