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년이 들어 금주령이 내려진 어느 해, 진주유씨 가문의 유진항(柳鎭恒)이라는 사람이 금주령을 어기고 술을 만들어 팔거나 마시는 자들을 적발하고 처벌을 담당하는 벼슬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임금이 불러 말하기를
“남산골 어딘가에서 몰래 술을 만들어 팔고 있다는 소문이 있으니 네가 가서 그놈들을 찾아 사흘 안으로 잡아 대령해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조정에서는 유진항에게 이미 얘기한 사흘 안에 이 밀주범(密酒犯)들을 잡아오라고 다그치면서 만일 그때까지 잡아오지 못하면 유진항을 대신 벌주겠다고 하니 난처할 따름이었습니다.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는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습니다.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를 어쩐다.’
유진항은 생각을 거듭한 끝에 묘안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그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기생을 찾아갔습니다. 좋은 안색으로 기생과 안부를 나누고 쓸데없는 잡담을 늘어놓던 유진항이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는 아파 죽겠다며 난리를 치고 땅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기생이 급히 의원을 불러 오려고 나가는데 유진항이 기생이 나가는 것을 말리며 하는 말이
“내가 어릴 때부터 헛배가 불러 자주 아픈데 이럴 때마다 술을 조금 먹으면 나으니 어디 가서 술을 좀 구해 오시게나. 빨리 못 먹으면 난 죽을 수도 있네.”
기생이 그 말을 듣고 나라에서 금주령이 내려 어디서도 술을 구할 수가 없는데 어찌 술을 가져오라 하시느냐고 대답을 하면서도 못 먹으면 죽는다니 겁도 나고 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데, 유진항이 더 펄펄 뛰며 죽겠다고 소리를 치니 마지 못해서
“정히 술을 드셔야 나으신다니 제가 한번 구해 보겠습니다.”
하고는 빈 술병을 치마폭에 숨기고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초가집 앞에 숨어 있던 유진항이 나오는 기생의 팔을 덥썩 잡았습니다. 어리둥절해 하는 기생을 끌고 그 초가집의 방을 신을 신은 채로 쳐들어갔습니다.
방안에는 한 젊은 선비가 책을 읽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유진항이 칼을 빼들고 큰소리로,
“네 이놈, 네 잘못을 알렸다. 지엄한 국법을 어긴 죄로 네 목을 내어 놓아야겠다.”
하며 단숨에 목을 벨 기세인데, 서생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빌며 말하기를
“나으리, 제가 국법을 어겨 죽어 마땅하오나 죽기 전에 어머니를 한번만 뵙게 허락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유진항이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딱한 구석도 없지 않아 허락하였습니다.
“이놈은 책만 읽을 줄만 알지.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제가 다 한 짓이니 저를 잡아 가십시오.”
하는데, 옆에 같이 끌려와 있던 그 기생이 말하기를
“사실 이 사람은 제 서방입니다. 이분은 시어머니시구요. 매일 책만 읽는 서방님과 다 늙은 시어머니가 무얼 안다고 술을 만들겠습니까? 다 제가 혼자 한 짓이니 제 식구들은 죄가 없습니다. 이년이 죽을죄를 졌으니 저를 잡아가십시오.”
세 사람이 서로 자기를 잡아가라고 울며 애원을 하니, 유진항도 그 애절한 모습만 바라만 볼 뿐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거 참 환장할 일이구만…도대체 이 상황을 어찌할꼬? 대체 누구를 죽여야 하나? 에라 모르겠다. 그냥 내가 벌을 받고 말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냥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빈손으로 조정에 돌아온 유진항은 임금에게 몰래 술을 만드는 사람은 없다고 보고하면서 기일을 어긴 자신에게 벌을 내려달라 했습니다.
유진항은 잠시 옥에 갇히기는 했으나 곧 풀려나서는 어느 지방의 수령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부임한 곳에서 유진항은 고을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지 못하여 원성만 듣고 있었습니다. 유진항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이 들려 와서 조정에서는 암행어사를 그 고을로 보냈습니다. 바로 그 암행어사가 유진항이 살려주었던 남산골 밀주가(密酒家)의 그 선비였습니다.
출처 : 한국구비문학대계(제보자 : 박성배, 서종면 정배리 72세 남),정리 : 양평구비문학조사단
남산골 선비가 은혜를 갚은 이야기
조선시대에 조정에서는 종종 백성들에게 금주령(禁酒令)을 내렸습니다. 술을 만들어서 먹는다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곡식을 낭비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흉년이 들면 더 엄격하게 시행을 했다고 합니다.
소문이 나기는 했으나 국법을 어기고 술을 만들어 팔다 잡히면 목이 달아나기 때문에 좀처럼 밀주가(密酒家)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기생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한 유진항은 자신이 언제 아팠냐는 듯 훌훌 털고 일어나더니 그 기생의 뒤를 밟았습니다. 기생은 조심스럽게 뒤를 살피면서 한참을 가더니 남산골 어느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초가집으로 들어갔다가는 금방 밖으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국법을 어겨 곧 죽게 될 아들을 잡고 대성통곡을 하며 유진광에게 사정하기를
유진항이 풀어준 이후, 더욱 열심히 공부에 매진한 선비는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암행어사가 되었습니다. 암행어사는 원래 전국을 돌며 지방 수령의 잘못을 가려 합당한 처벌을 해야 하지만, 예전에 유진항에게 은혜를 입은 바 있는 이 어사는 비록 유진항이 지방의 수령으로서 잘못을 했지만 처벌하는 대신, 앞으로는 고을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라며 잘 타일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