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식이 열 살 남짓 되었을 때, 고개 너머에 있는 서당에 다녔습니다.
하루는 부지런히 서당에 가고 있는데, 항상 넘던 고개에서 아주 예쁜 처녀와 마주쳤습니다. 이식이 별 생각 없이 지나치려는데, 갑자기 그 예쁜 처녀가 이식의 손목을 꽉 붙잡더니 같이 놀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식은 지금 서당에 가서 글을 배워야 하니 놀 수 없다고 했지만 그 처녀는 막무가내로 이식을 끌어안고 풀밭으로 쓰러져 버렸습니다.
그날 이후로 이식이 서당에 갈 때마다 그 처녀는 항상 그 고개에서 이식을 기다렸다가 이식이 오면 이식을 끌고 수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매일 그렇게 시달리던 이식은 몸이 점점 수척해지고, 얼굴에는 노란 꽃이 피었습니다. 이식에게 이상함을 느낀 서당 훈장이 하루는 이식을 불러 앉히고 물었습니다.
“식아, 너 요즘 이상하게 몸이 좋지 않아 보이는데 무슨 일이 있느냐?”
“없습니다. 스승님은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라고 거짓을 말했습니다.
“음..내가 다 알고 있으니 이실직고 하거라.”
하니 그때서야 이식은 고개에서 처녀를 만난 일이며 그 처녀와 벌어진 일들을 사실대로 서당 훈장에게 털어 놓았습니다.
“제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니라 꼭 고개만 넘어서면 매번 그 처녀가 나타나서 저를 꼭 잡고 놓아 주지를 않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로는 몸이 좋지가 않습니다.”
“그러면 내일 또 그 처녀가 너를 기다렸다가 똑같은 짓을 하겠구나?”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내일 만약 그 처녀를 만난다면 그 처녀가 너를 안고 입을 맞추려고 할 때, 입에서 구슬이 나올 것이다. 그러면 재빨리 그 구슬을 잘라 먹고서, 있는 힘껏 그 처녀를 떼어 내고 오너라.”
다음날 이식이 고개에서 넘어가는데 역시 그 처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식을 본 처녀가 이식을 안고 입을 맞추려고 하자 이식은 어제 훈장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처녀의 입에서 나온 구슬을 잘라 냉큼 먹어버렸습니다. 그러자 그 처녀가 갑자기 화를 내며, 구슬을 내놓으라고 때리고 할퀴는 것이었습니다. 한동안 처녀에게 매를 맞던 이식이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보니 그 처녀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이식이 서당에 와서 훈장에게 있었던 일을 말했더니 훈장은,
“잘했다. 너는 앞으로 학문이 크게 늘 것이니 공부 열심히 하거라.
하며 칭찬해 주었습니다.
이식은 이후 글공부에 전념하여 과거에 급제해 대제학까지 오르고 학자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출처 : 한국구비문학대계(제보자 : 박용기, 지평면 월산리, 58세, 남),정리 : 양평구비문학조사단
이식과 처녀
조선 중기의 이름난 학자인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어릴 때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