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왕창리

김군석

(金君錫, 1610~?)      문신. 자는 承休, 본관은 연안, 연흥부원군 김제남의 손자이고 청주목사 金琜의 둘째 아들이다. 1613년(광해 5) 계축옥사 때에 君錫天錫 형제가 숙부인 초계정씨의 예지로서 놀라서 죽었다고 허위 장사지내고 야밤에 두 형제를 원주 외가댁으로 피신케 하였으나 외가에서도 위험하여 두 형제가 심야에 거리를 헤매다가 치악산 영원사의 승려를 만나 영원사에서 삭발위승하고 10년 동안을 피신하였다.   인조반정으로 신원되어 금부도사로 […]

김 도

(金濤)      고려 문신. 자는 長源, 본관은 연안이다. 공민왕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전주사록, 정언을 맡았다가 파직되었다. 1370년(공민왕 19) 정조사 권균을 따라 명나라에 들어가 이듬해 중국의 제과에 급제, 동창부 丘縣의 丞에 임명되었으나 중국어에 서툴고 고향에 노친이 있음을 이유로 사퇴하고 귀국했다.   우사간 예문관 응교에 발탁되고 성균사예에 올랐다. 우왕 때에 밀직제학으로서 찬성사 홍종선에게 아부하여 권신 이인임(?~1388)의 미움을 […]

김자지

(金自知, 1367~1435)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자는 元明, 호는 逸溪, 본관은 延安, 시호는 文靖, 밀직제학 金濤의 장자로 金汝知의 형이다. 1385년(우왕 11) 문과에 급제한 뒤 1408년(태종 8) 형조참의, 1417(태종 17) 경기도관찰사를 거쳐 1420년(세종2) 대사헌에 올랐다.   그 뒤 원주목사, 평안도관찰사에 이어 1428년(세종 10) 형조판서가 되었다. 만년에는 개성부 유수를 역임한 후 1434년 68세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특히 대사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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