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조현리

윤 신

(尹璶, 1568~1624)      자는 希玉, 본관은 해평, 좌찬성 윤승길(尹承吉)의 아들이다. 1568년 1584년(선조 17)에 1595년 진사시험에 합격하고 1599년 음직으로 의금부도사를 제수받고 1600년 금오랑이 되고 이어 훈련도감량에 뽑히어 활약한 공이 크므로 낭청에서 공로상을 받았으며, 통진현감을 거쳐 능성현령을 지냈다. 1610년(광해 2) 3월 공조좌랑, 형조좌랑이 되었다. 1613년에 양근군수를 제수받았는데, 이것은 늙은 아버지를 봉양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평양소윤에 제수되었다. 병에 […]

불응개

赤峴 마을 동쪽에 은개고개가 있고 서쪽에 막골로 가는 고개, 중원리 솟대배기로 가는 고개가 모두 붉은 흙고개로 형성되어 마을 명을 붉은고개(赤峴) 또는 불응개로 불려져 내려오고 있다.

막골 막동

幕洞 남악공(南岳公)은 12세로 휘(諱) 승길(承吉), 호(號)는 남악(南岳)임. 군호(君號)는 해선군(海善君), 시호(諡號)는 숙간(肅簡)이다. 원종일등공신(原從一等功臣)이요, 관지(官至)는 좌참찬(左參贊)에 이르고 특증(特贈)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다. 남악공(南岳公) 윤승길 선생님의 차녀와 선조왕(宣祖王) 일곱째 왕자 인성군(仁城君)과 국혼을 맺고 공은 광해 4년에 해선군(海善君)에 봉작되었으며, 1616년 11월 21일 77세로 서거하자 부인께서 단식을 하시어 한 달 후에 운명하시자 100일 장례로 1617년 1월 장지 입구 솟대배기에서 묘까지 400m에 비단을 […]

조동

이곳은 창녕조씨(昌寧曺氏) 승달공 조좌랑이 이곳에 은거하고 지내다 생을 마치고 묘소가 마련되어 조좌랑골 또는 조동(曺洞)으로 내려오고 있다.

조현리

   조현리(曹峴里)는 본래 지평군 하서면의 지역인데 융희 2년(1908)에 양평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적현리, 장평리, 막곡리, 조좌리와 운계리, 오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조좌와 적현의 이름을 따서 조현리라 하여 용문면에 편입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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