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계정리

홍 률

(洪瑮)      남양홍씨 입향조. 자는 汝粹, 본관은 남양, 익원군 洪慶霖의 현손이다. 선조 때에 진사에 합격하였는데, 양동면 계정리로 낙향하여 입향조가 되었다. (양동면)

이 여

(李畬, 1645~1718)      조선후기 문신. 자는 治甫, 호는 睡谷·睡忖·, 시호는 文敬, 본관은 덕수, 시정 이신하(李神夏)의 아들로서, 우암 송시열의 문인이다. 1680년(숙종 6)에 춘당대시문과에 4등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에 제수되었고 홍문관정자·승지를 거쳐 1686년(숙종 12) 부제학이 되었다.   그러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송시열과 함께 면직되었다가 1694년 갑술옥사로 남인이 몰락하자 형조참판에 기용되었고 중궁복위교명문을 짓기도 하였다. 이후 사간원 대사간을 시작으로 숙종 27년(1701)에는 판의금부사로 […]

대월

大月 대월은 골이 깊고 산이 크며 산 능선이 둥글게 감싸여 있어 대월(大月) 둥근 달로 표현하여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다. 반월형으로 생겼다 해서 대월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동이점말

계정3리는 골짜기와 동리마다 그릇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그릇 깨진 파기 조각이 지금도 많다. 동이점말은 물동이를 만드는 점터가 있어서 그때부터 붙여진 이름으로 알고 부르는가 보다. 옹기점이 있었음.

여물이골

용마봉 밑에 있는 큰 골짜기로 계정리에는 여물이골, 작두골, 구융골, 논골, 소를 기르는데 사용했던 도구 이름으로 부르는 곳의 하나로 용마 먹이로 여물을 썰어두었다 하여 전하여 온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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